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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pr 18. 2020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독후감86

 4월은 벌써 중순인데 여전히 봄 같지 않은 봄의 연속이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마음에도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듯하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남아 있어 봄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이번 봄은 왔지만 왔다고 할 수 없이 그냥 가나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나니 봄 같은 여름을 즐긴 듯하여 2020년엔 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무라이 슌스케라고 하는 분의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매년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기타아사마에 있는 오래된 별장지의 ‘여름별장’이라 이름 지은 곳으로 사무소 기능을 모두 옮겨 건축 설계 작업을 진행한다. 도쿄의 더운 여름을 피하고 좀 더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여름별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어떻게 생긴 여름 별장에서 설계를 할까?

올해 여름별장에서 준비해야 할 무라이 설계사무소 최대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이다. 무라이 선생님은 어떤 플랜으로 설계하셨을까? 그 모습은 어떨까?

경합 상대인 후나야마 게이이치 건축연구소의 아이디어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건축을 소재로 한 소설인만큼 건축물 형태나 배열, 구조와 같이 디테일을 보여주는 삽화를 기대했었다. 소설가의 자존심인가? 한 컷의 그림도 없이 차분하게 모조리 글로 묘사한다. 여름별장도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플랜도 후나야마 건축연구소의 구상도 모두 다 따박따박 글을 읽으면서 작가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름별장도 설계 초안인 도서관도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글 읽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또한 글 쓰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건축이란 ‘가족 구성이 같다 하더라도, 맞벌이 부부의 집과 전업주부가 있는 집은 자연히 플랜이 달라진다’고 하는 이리도 쉽고 간단한 명제를 실천하는 작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고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건축에 대해 몇 마디 섞을 순 있지만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의 동선과 상황을 고민하고 반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숙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건축가가 아닌 소설가로서 건축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건축과 건축 이외의 소설 소재들과의 조화를 위해서 엄청난 양의 스터디로 내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읽는 도중 여름별장에서 직접 조리해서 먹는 음식들, 간식거리, 차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 여름별장에서 보이는 아사마 산山 주변의 주거住居 역사, 건축에 관한 책들, 새와 식물들 그리고, 꽃을 키우고 가꾸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소설 읽는 재미의 필수인 연애 이야기도 빠짐이 없다.


작가는 이런 내공을 뽐내며 글을 적지 않는다.

독후감을 쓰면서 이 부분의 표현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 많이 알고 있고, 이렇게 많이 조사했어’라고 자랑하지 않고 담담하면서 세련되게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적었다’라는 표현보다도 ‘써 내려갔다’라는 표현이 적합한 이유는 글이 헐떡임 없이 무리 없이 강물 흐르듯이 막힘이 없다. 흐름이 빠르지도 않고 유유하다.


 휴가 때 읽기 적합한 책이 아닐까?

표현은 차분하고 세련되며 모든 문장들은 해당되는 배경의 시간과 계절에 제자리를 잡았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인 앞마당을 연상시키며,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 위에 이야기가 스며져 있다. 새벽에는 안개에 버무린 나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강물의 흐름 같아서 갑자기 읽기가 끊겨도 그러다 다시 읽어도 무리가 없다. 모래사장이나 수영장의 선베드 sunbed에서 책을 읽다가 아이가 불러 잠시 책을 덮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펼쳐도 바로 글의 흐름에 글 읽는 전개를 맡길 수 있다.

소설은 사계절을 모두 담고 있지만 특히 무라이 선생님과 함께한 깊은 녹색의 여름을 잊을 수 없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건축은 빈 공간에 무엇을 만드는 것이다.

만들어 채우는 것이 과過할 때 우리가 자연스럽게 거부감을 갖는 것을 보면 과한 것을 해체시켜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건축일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 채우는 건축으로 향하다 마지막에서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축의 여운을 남긴다.

무라이 선생님의 삶에도 여운이 남는다. 여운이 남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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