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징글징글한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징글징글한 것이 아니고 삶이 징글징글하다.
삶이 소설이 될 수 있고 소설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지만, 삶이 비극이 되는 것은 싫다.
개인적으론 해피엔딩이 좋다. 하지만......
김약국 집 둘째 딸 용빈이가 말한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배가 침몰되어 물에 빠져 죽은 거예요.”
소설 주인공들의 진한 사투리 때문인지 비극이 주主가 되어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침울한 느낌이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작가 박경리 할머니(1926~2008,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작가이기도 함)의 글 때문이기도 하다. 글의 전개에 지체遲滯가 없다.
사람이 죽는데 한 문장이면 족하다.
- 집으로 돌아온 봉제 영감은 독사의 독이 아닌 파상풍으로 죽었다.
- 그렇던 손자는 돌림병 마마에 죽었다.
- 그러나 두달 후 송씨는 죽었다.
- 욕지섬 어장막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 “으흐흐흑, 아이고 불쌍해라. 그 어진 마네님이!”
딸만 다섯 둔 집이 흔하지는 않다.
[김약국의 딸]이 한 일 합병 이후 1900년대 초중반의 이야기라면 그로부터 100년 전 영국 런던 근교에도 딸만 다섯을 둔 딸 부잣집을 알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첫째 딸 제인은 마음씨가 착하고 미모가 출중하다. 김약국 집 첫째인 용숙이의 미모와 넷째인 용옥이의 착한 마음씨를 닮았다. 똑 부러진 성격에 할 말 다하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둘째 용빈이를 닮았으며, 본능적 충동에 충실한 막내 리디아는 셋째 딸 용란이를 닮았다.
두 소설 모두 조선 통영과 영국 런던에 사는 중상류층의 삶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두 소설 모두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집 부모의 바람은 딸들이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다행히 [오만과 편견]은 해피엔딩으로 끝났고, [김약국의 딸]은 비극으로 끝났다.
정말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자식이 없으면 자식이 없어서 애걸복걸하고 있고, 소설에선 자식이 있어도 먹고살기 힘들어 자식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일을 하다 죽는다. 자식이 있어도 먹고 살만 하면 자식이 사고를 쳐서 고민이 끝이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자식들도 때가 되면 자식으로 고민하겠지.
100년 전에도 결혼해서 아기 낳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었구나!!
예전에나 지금에나 평범하게 별고別故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은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이야기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