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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Sep 12. 2020

개인적인 체험 / 독후감107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정상적이지 못한 외모로 태어난 아기는 묽은 분유에 설탕물을 공급받으며 죽음을 기다린다. 태어난 아기를 살리려 애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이를 쇠약사衰弱死 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신생아 아버지의 추락을 비웃듯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아기는 건강해지지만 인간의 추락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아! 한 단계 더 이렇게 인간이 추해질 수 있구나!’




 소설의 아름다움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일까? 아니면 상상조차 뛰어넘는 플롯의 전개일까? 생각하다가 다시 책을 펼쳐 읽는다. 소설 최고의 아름다움은 그림 한 컷 없지만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의 상황과 인물 묘사가 아닐까? 눈 앞에 글의 장면들이 선하다.

 장면 묘사를 뛰어넘어 불필요하게까지 느껴지는 소소한 것들의 묘사가 소설의 핵심일 수도 있다. ‘주인공(버드, 아기 아빠)은 통로를 지나간다’로 적을 수 있지만 ‘버드는 지나치게 살이 찐 나부의 브론즈와 몬스터 트리 화분 사이의 통로를 고개를 떨구고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여기서 지나치게 살이 찐 나부의 브론즈는 작가가 계획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출산을 위해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내의 곁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의사는 아이가 기형이라는 소식을 전해준 그 원장이다.


병원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아내에게 기형으로 태어난 아기에 관해 공유할 수 없는 버드는 대학교 시절 여자 친구였던 히미코네 집으로 간다.

남편이 자살한 아픔을 지닌 히미코와 아기의 쇠약사를 기다리는 버드는 다원적인 우주를 이야기한다. 다원적인 우주란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인간은 그가 죽어버려서 그와는 관계가 없어진 우주와 그가 여전히 살아나가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우주라는 두 개의 우주가 생겨나고 다음의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섰을 때, 또다시 우주는 세포 분열을 하는 다원적 우주라는 개념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듯하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 그 아픔을 어떻게 알까?

아기 태생의 비극에 의해 일어나는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아픔과 경험을 끄집어내어 쓴 진정으로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기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모든 관심을 나 자신에게로 끌어 모아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는 것은 지적 장애 아들을 둔 작가는 자신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로써 작가는 자신을 다시 한번 극복했을 것이다.

 책 제목 [개인적인 체험, 個人的な 体驗]은 진정한 개인적인 체험이다.


 글의 중간중간에 모스크바 핵실험 재개에 대한 이슈가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온 세상 인간이 핵실험 한 가지로 겪게 될 나쁜 운명이 형성되어 가고 있지만 버드는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는 아기 괴물의 생사에만 매달려 있다. 버드가 아기를 다루고 있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세계가 핵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인류 생존의 문제처럼 어렵고 힘든 해결 과정이라는 연결고리를 잇고자 하는 것일까? 막상 버드는 무관심하기만 하다.

 무관심하기만 한 버드의 버킷리스트는 아프리카 여행인데 가족이 없으면 아프리카는 무슨 소용인가? 꿈이고 소원이고 무슨 소용인가?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버드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나는 아기 괴물에서 수치스러운 짓들을 무수히 거듭하여 도망치면서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나 자신을 지켜 내겠다고 시도한 것일까?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다시 버드는 비상飛上하는가?

사람의 의식전환이 이렇게나 무섭다! 한 권내내 끌고 오던 모든 것이 한 페이지 아니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끔찍한 공포감이 버드를 사로잡았다.’

버드는 현실의 삶을 살고 있다. 사람이 현실을 살고 있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구나!

 현실의 삶을 살고 있는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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