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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Feb 06. 2021

상실의 시대 / 독후감128

노르웨이의 숲

 책에 몇 년 더 머물고 싶었다.

젊은 날엔 사랑만 했다. 그 사이사이를 오랜 우정과 새로운 우정들로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대였을까? 젊은 날엔 우정만 했을 것이고 그 사이를 시작한 사랑과 새로운 사랑들로 채웠다. 젊은 날엔 젊은 날을 채우느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희생하기 위함인가 독차지하기 위함인가 행복하기 위함인가 문득 던져서 받는 질문 하나가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젊은 시절 동시에 그런 고민을 했더라면 조금 더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책 덕분에 인류 역사적으론 진부하지만 나에겐 신선한 질문 하나가 던져졌으며 예전 나의 상실의 시대가 소환되었다. 사랑과 우정보단 다른 것들로 채우고 있는 지금에는 그 질문이 소중해져서 책에 몇 년 더 머물고 싶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훈 작가를 혼동하는 것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겠으나 그 둘의 글이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어떤 점이 닮아 있다는 것인가?

 둘의 글이 그냥 좋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 맘 저 안쪽에 저항도 필요 없이 옳다고 하는 그 무엇, 태어날 적 가지고 왔다가 세상을 떠날 때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다시 가지고만 가는 작은 순수 덩이를 자꾸만 차분하게 건드린다고 해야 하나? 자꾸만 밑줄 긋게 만드는 글이다.

 아니면 이럴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글에 무라카미 씨의 글을 합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어딘가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교집합 삼아 합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두 분은 당치도 않는다고 하겠지만 시나브로 혼동이 된다.


 37세가 된 주인공 와타나베는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들려오는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면서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나오코’와는 약간은 어색하지만 풋풋한 사랑을 이어 나가는 동시에 대학에서 만난 ‘미도리’와는 약간은 파격적이고 다분히 고지식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누구 하나 범상한 캐릭터는 없다. 누구 하나 아픔을 머금고 있지 않은 이는 없다. 이들이 관계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 너무나 서로 솔직해서 비정상으로 혹은 변태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젊은 그들은 모두 사랑했으며 상실의 시대를 겪는다. 정정당당히 무심코 현실을 겪는 이도 있지만 삶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상실의 시대를 안겨주는 이들도 있다. 무엇 하나 우리의 젊은 시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무라카미 씨의 소설을 좀 더 많이 접했어야 했다.

내 비교는 무색했다. 무언가 착각했었고, 무언가 고집스러웠다. 어설픈 교집합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하나 피어났다. 그의 글은 어딘가 일본인 작가의 느낌이 풍긴다는 것이다. 이제 좀 제대로 판단하고 있나 보다. 그는 당연히 일본인이니까.

 와타나베가 미도리네 고바야시 서점을 찾아가 둘이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 상황은 오야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주인공 버드가 예전 여자 친구 히미코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문득 생각나면서 일본인 작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김훈 작가와 연결시키는 것보다 조금 더 납득이 간다.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도쿄 거리를 끝없이 걸으며 산책하는 부분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 산시로가 산책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에서 매일 일정한 코스로 산책하는 오카다가 산책하는 것도 연결된다. 요양원에 들어간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보낸 긴 편지에서는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錦繡]에서 이혼한 예전 부부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가 생각난다. 이 소설은 자꾸 나를 이리 저리로 이끈다.




 빠듯한 와중에 글을 읽기만 하면 여유에 탑승한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글의 흐름이 좋다. 노르웨이 숲에 있는 듯 느껴진다. 삶에 허덕이지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않는. 생기를 잃진 않았지만 여유를 놓치지 않는 글의 전개에서 삶은 상실로 인해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리고, 질문을 다시 한번 되뇐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책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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