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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Feb 13. 2021

바깥은 여름 /독후감129

 눈 앞 책장에 꽂힌 책을 집어 들기까지는 때론 몇 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게으름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눈 앞에 꽂힌 책을 알고 싶은 내 마음과 책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건네줄 때 우리가 받고 싶은 마음을 갖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결국 펼친 [바깥은 여름]이란 책에는 ‘바깥은 여름’이란 글은 없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일까? 읽어보고 친하게 지내었으면 한다. 서로 이제야 만났으니.




 사람이 새 출발하는 광경은 아름답다.

막상 읽어보면 별반 다를 것 없는데도 궁금하고,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내가 경험해서 이미 알고 있는 예상 가능한 난관들을 확인하는 것에도 묘한 흥미가 생긴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작년 봄이다. (중략)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 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 년간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마음이 자주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내 공간에 붓는 돈이라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꼭 두 번씩 읽게 된다.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집을 사게 되었는지, 어떤 가재도구들을 마련했는지, 집은 어떻게 꾸미고, 어떻게 청소하고 사는지 하는 삶의 내용들이 나와는 무엇이 다를까 비교해보기도 하며 좀 더 흥미롭다.


 삶은 약간 차분하고 슬퍼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야 좀 더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매일이 해피 엔딩이고 매일이 우렁차다면 우리는 금세 무뎌져서 다시 슬픔으로 돌아갈까? 작가가 적어내는 서사는 어두워 깜깜한 건 아니지만 밝지는 않다. 여기서 다른 작가 ‘한강’이 소환된다. 둘 중 누가 더 슬플까? 김애란의 슬픔은 성장통 같은 생활 속 슬픔이고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슬픔이고, 한강의 슬픔은 역사 속 슬픔이고 너무나 쓰리고 아픈 슬픔이라 감당하기 힘들다. 삶이 쌓여 역사가 되니 모두 같은 말일 수 있겠으나, 각기 다른 슬픔으로 나에게 들어온다.




 [바깥은 여름] 안에는 눈물을 머금은 일곱 편의 소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소설들의 엄마 김애란은 ‘작가의 말’을 다음과 같이 마쳤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바깥은 여름]이란 제목은 작가의 안은 겨울일 것이다. 그 안은 춥고 슬픈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바깥은 여름이어서 일곱 편 소설인 그녀의 아이들은 슬픔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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