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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22. 2022

우리는 정글로 출근한다 /독후감217

우리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정글로부터 생긴 우리의 본성은 사무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글로 출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원시시대보다 상당히 편안한 환경을 누린다.

대체 원시시대의 행동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까? 어느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서로 해야 할 일을 나누는 방식의 삶은 고작 1만 년 된 것이다. 이 시간은 선택된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기에는 너무 짧다. 오늘날 우리는 초원에서 세미나 공간에 옮겨다 놓은 나무가 있는 환경에 살며, 누가 누구인지 환하게 꿰던 족벌과 이웃 대신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몇 백만 명이 함께 사는 대도시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원숭이의 본성은 간직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행동이 가지는 자유의 폭은 깔때기를 연상시킨다.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행동은 다양해진다. 그러나 생존에 중요한 요소에 가까워질수록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된다.

 자유로운 두 손, 불 그리고 언어는 우리 인간을 초원에서 회의실로 쏘아 올린 로켓이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진화가 활활 불타오르게 만든 촉매제이지만 생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 상황은 변한다.

 우리 인간은 초원을 떠나기는 했지만, 초원은 여전히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협력하도록 진화되었다.

그런데 대체 왜 인간은 속임수에 빠질까? 어째서 사람들은 몇천 유로라는 돈을 그 몇 배를 받겠다는 희망으로 나이지리아로 송금할까? 왜 조카가 급한 일로 돈이 필요하다는 전화 한 통에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까?

 우리 인간은 진화를 통해 협력이라는 전략으로 가장 큰 성공을 올리도록 프로그램되었다.

이는 곧 상대가 친절한 제안을 하면 우리 역시 친절한 응답을 해야 한다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친절함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응대하자! 피싱을 하는 사기꾼은 고전적인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런 속성을 이용한다. 일단 친근하게 어깨를 툭 치고 협력을 제안하고는 본격적으로 공격한다.


 길게 놓고 보면 결국 정직正直이 이긴다. 

그런데 대체 왜 거짓말은 진화의 과정에서 퇴화되지 않았을까?

 우리 인간은 200만 년을 말이 없이 살았다. 그랬다가 4만에서 6만 년 전에, 또 일각에서는 10만 년 전이었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우리 인간은 언어를 발달시켰다. 200만 년이라는 긴 세월에 비하면 고작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이뤄진 일이다. 언어의 발명과 더불어 이 지구라는 이름의 별에 거짓말도 나타났다! 일단 모습을 드러낸 거짓말은 쉴 새도 없이 이어졌다.

 한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시도해보라. 아마 거의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를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거나, 어떤 것을 맛있어 보이게 꾸밀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언어의 탄생과 더불어 거짓말은 지구라는 이름의 별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거짓말을 하는 데 드는 수고는 없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면 거짓말은 이미 완성이다.


 뒷담화도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대기업의 총수가 24시간 내내 도전을 의식하며 우월함을 과시함으로써 그 지위를 명확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총수는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막아줄 장치를 필요로 한다. 힘은 기업을 이끄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하는 수단을 우리는 ‘뒷담화’라 부른다. 잠재적인 도전자들이 소문을 듣고, 이 ‘뒷담화’에 떤다며, 총수는 도전자와 끊임없이 대적할 필요가 없다.

 일시적일지라도 부서나 경영진과 이사진에 계급 질서를 굳건하게 다지는 일은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앉은 의자의 다리에 톱질을 하는 것은 톱질하는 사람이나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많은 힘을 요구한다.


 행동 맞추기는 인류학이 잘 아는 현상이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문화는 짝짓기의 테두리 안에서 형식화한 구애 의식, 이를테면 춤을 통해 이런 행동 맞추기 기회를 제공한다.

 남자들은 굳어진 채 여인의 얼굴만 훔쳐본다.

남자들은 전반적으로 신중하며 되도록 움직임을 자제한다. 여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자는 몸을 자주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가 훨씬 더 적극적이다. 남자에게 관심이 클수록 여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여성은 남자에게 가지는 호감을 이처럼 운동으로 드러내며, 많은 몸짓, 자세 변화, 손 움직임 등으로 나타낸다. 여자는 옷매무새를 바로잡는 일이 잦으며, 말을 하며 손을 자주 움직인다. 또 앉은 자세를 바꾸어 가며 양팔로 몸을 가볍게 감싸거나 허벅지를 드러내 보이고는 이내 가린다. 반대로 남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여자는 얼어붙은 채 자세를 거의 바꾸지 않는다.

 남녀 사이의 행동 맞추기는 오로지 여자가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만 일어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역시 원숭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정글을 단순히 사무실로 옮겨온 것뿐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로 마무리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그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 로서의 성찰이 포함된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 행동이 진화론적으로 어떤 뿌리를 가졌는지 다룬 이 책에서 우리는 단순히 원숭이에서 진화한 존재에 그치지 않고 성찰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우리는 한 번쯤 멈추어 서서 주위를 돌아보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성찰할 능력을 갖춘 존재라는 것을 잊는 순간 원숭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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