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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29. 2022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독후감218

작가 황보름! 황보름 작가!

2018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황보름 작가는 ‘소설을 써볼까’하고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점 이름의 첫 글자는 ‘휴’로 시작되어야 한다, 서점의 대표는 영주이고 바리스타는 민준이다. 딱 이 세 가지 아이디어만 갖고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명명하고 분류한 ‘소프트 코어 soft core’ 소설이 태어났다.

 소프트 코어는 무언가 심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보여주는 하드 코어의 반대 개념이다.

타인이 보았을 때 영주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는 듯 무심히 조용히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고민한다. 바리스타 민준도 밖으로 내색을 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친구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유유자적 호수를 떠다니는 듯 보이지만 물 밑에서는 열심히 꾸준히 헤엄치고 있는 백조 같다. 삶을 회피한다고 이야기 듣지만 삶을 고민하고 있다.

부담 없는 내용의 책은 아니어도 부담 없이 읽기는 좋은 책이다. 마음이 좋아지는 책이다.

찾아보면 소프트 코어 소설들이 꽤나 많을 법하다.




 영주와 민준으로 시작한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점점 늘어난다.

‘정서’라고 서점에 앉아 하루 종일 원하는 만큼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휴남동 서점에 ‘정서’를 등장시킨다. ‘정서’를 소개한다. 그리고, ‘정서’의 과거를 설명한다.

정서는 사람들의 무관심의 내면엔 두려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던 인물이다. 새로운 등장인물의 설명 후에는 소설 안에서 ‘정서’라는 인물의 느낌과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썰렁했던 휴남동 서점에 이렇게 한 사람이 채워진다. 이렇게 채워진 등장인물들이 모두 다 따뜻하고 착하다. 모두가 ‘휴’ 자와 잘 어울린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 있을까?

갈등을 읽었지만 갈등을 눈치채지 못했다. 책 반절을 넘게 읽은 시점에서 영주를 만나기 위해 서점으로 찾아온 남자는 휴남동 서점의 구성원들을 긴장시킨다. 이때 처음으로 갈등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소설인데 사람 사는 이야기는 저마다 모두 다르니 세상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지 분간하기 어렵다. 단지 누군가가 혹은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느냐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서점으로 찾아온 남자는 갈등이 아니었고 주인공 영주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갈등을 풀어주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말 한마디가 ‘미안하다’인데 말하기도 힘든 만큼 막상 듣게 되면 사람을 울컥하게까지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진 단어다. 책에서는 쉽사리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내지 않는 대신 사람들의 배려와 행동에서 미안함이 서려있다.

 헐레벌떡 어쩔 줄 몰라하는 미안함이 아닌 차분하고 겸손한 미안함이다.




 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아들에게 ‘서점을 차려보면 어떨까?’하고 이야기했었다.

내가 읽은 책들만 모아둔 책장도 서점의 한쪽에 만들고 싶었다. 그 책들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로 꽂아 놓고도 싶었다. 책방 이름은 [tvoffbookopen 티보프부코펜]으로 지었다.

 TV OFF! Book Open!! 을 쭈~욱 붙여 놓은 이름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서점 오픈과 운영에 대해 소소히 만들었던 생각들이 같이 떠올랐다. 영주가 되어 생각해보기도 하고, 오랜 시간 살아남은 해외 독립 책방들을 탐방하기 위해 여행 가는 영주를 읽으며 부럽기도 했다. 갑자기 다시 서점이 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준 아들에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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