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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Nov 19. 2022

태엽 감는 새 /독후감220

작가에게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는 독자가 장편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버금갈 정도로 뿌듯하고 의미 있는 도전이 아닐까?’ 제4권의 마지막 책장을 닫으며 생각해본다.

기나긴 이야기의 플롯을 따라 많은 이미지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동네 빈집 정원에 있는 새의 석상도 메마른 우물도 스쳐 지나가고 등장인물 중 하나가 겪었던 몽골의 평원도 생각난다.

무엇을 읽은 것일까? 어떤 책을 읽은 것일까?

1년 남짓 책을 읽은 기간과 섞인 기억력은 드디어 장편소설을 완독 했다는 잔잔한 뿌듯함과 함께 또렷하지 못하다.




 와중에 뚜렷한 감정 하나가 여전히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 오카다 도루의 느긋함이 포근하다. 매일 매시마다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우리들과 비교해보면 부러울 정도로 서두르지 않는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만두고 집에 있는 서른 살의 젊은 남자는 안절부절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감에 충만해 있지도 않다. 자신에게 펼쳐진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찬찬히 수긍하는 느긋함이 포근하다. 이 느긋함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매번 책을 다시 펼친 듯도 하다.

 과하지도 않고 욕심도 없는 느긋함은 여유와는 다르다.

준비가 만들어준 여유가 아니라 지금 처한 상황에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차지하며 조절하는 아마도 주인공의 성정 性情 자체가 주는 느긋함을 즐기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그의 느긋함이 특별하고 특이한 것도 아니다.

 이튿날 나는 멀리는 나가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역 근철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한꺼번에 사다가 부엌에서 점심을 만들었다. 고양이에게는 커다란 정어리를 주었다. 오후에는 오래간만에 구청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했다. 벌써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수영장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천장의 스피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천 미터 가량 헤엄쳤는데 그때부터 발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그만하기로 했다. 수영장 벽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었다.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지만 오카다 도루가 만드는 삶의 뉘앙스에 위로를 받는다.


 고독감이 배어 있는 소설이라 읽으며 쓸쓸해지기도 한다.

오카다 도루를 찾는 이는 많지 않지만 거꾸로 주인공은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찾아다니고 출근 후 사라져 버린 아내 구미코를 찾아 헤맨다. 

바깥 사회에선 아무 욕망도 없이 외톨이인 주인공이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사라져 버린 존재들을 찾기 위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누군가와 만나기도 하고, 본인 자신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선다. 

사라진 존재를 찾는 과정이 거꾸로 자신의 존재를 찾는 과정이 되는 반어법 적인 상황을 만든다. 아무 욕망도 없는 듯 하지만 사라진 존재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도 깊은 자기애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결국 길고 긴 장편소설의 이야기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결말이다.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옆에 누가 있어야 내 존재가 유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양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구미코와는 연락이 닿았다.




 살다가 문득 궁금해지는 작가들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보다는 때가 되면 문득 그들의 글이 읽고 싶어 진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자기소개를 자신이 좋아하는 굴튀김을 소재로 이용하여 쓸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역시 마음만 먹으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어떤 소재와 장소와 인물이든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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