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은근하고 잔잔한 두려움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불안이다.
‘가장 불안할 때 가장 담대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말은 모두가 동의하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만큼 실천하기 힘든 말도 없다.
‘담대하자! 담대해지자! 담대해져야지!’라는 의지가 있어도 주저 않게 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변의 조언이나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고프다. 동감해 주는 한마디도 좋고, 위로해 주는 한마디도 좋고, 그냥 내 상황을 들어만 주어도 좋다.
평소엔 잔소리 같던 말들이 내가 불안할 땐 도움으로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반복되지 않은) 잔소리는 진리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참으로 잘 다듬어지고 도움되는 잔소리를 읽고 있는 듯했다. 다 알고 있어도 도움이 됐다.
두려움은 무지無知 로부터 비롯된다.
뇌는 무지의 상태를 싫어한다. 무지를 싫어하는 뇌는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장면’을 채워 넣어 확실하지 않은 상태를 메꾸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상’이다. 무지로부터 별의별 상상이 시작되고 상상은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두려움의 증폭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하고 호흡하는 숫자를 세어본다. 중간에 다른 생각으로 빠졌거나 호흡을 놓쳤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왜 호흡의 관찰이 두려움을 끊는 데 효과적일까. 호흡을 관찰할 때 집중(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온통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에 쏠렸던 주도권이 관찰을 통해 대뇌피질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준다.
외로움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외로움은 물리적 거리가 주는 외로움이 아니다. 가정이든 조직이든 거친 시련을 맞닥뜨리면 일단 위축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심리적 위축에 의해 자연히 사회적인 접촉은 줄어든다. 접촉이 줄어들면 외로움이 증가하고, 외로움이 증가하면 심리는 더 위축된다. 일반적으로 이에 대한 주변의 조언은 외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사람과의 연결을 유지하라고 한다.
하지만 무언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싶다.
외로움은 무기력으로 쉽게 이어지고, 무기력은 무계획으로 쉽게 빠져든다. 무기력보다는 외로움을 보다 적극적으로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적극적으로 홀로 되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외로움을 맞이해 보는 것이다. 혼자 있어 외로운 시간을 축적과 몰입과 재충전의 기회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두려움과 저항을 내려놓고 그저 홀로 있음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이 있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위기는 위기일 뿐이다.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벗겨내 버린다. 어려움이 닥치면 움찔하며 물러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런 본능을 따라가서는 본질을 찾거나 기회를 발견할 수 없다.
한 발짝도 도망치지 마라. 파도가 오면 정면으로 부딪쳐라. 모든 것을 잃은 다음 날에도 일어서라. 당당하게 돌파하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만 행운이 언뜻 모습을 비출 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숲으로 들어가라. 그곳에는 어떤 길도 나 있지 않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길이다.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은 대개가 선불이다.
먼저 그 값을 온전히 치른 다음에야 보상을 안겨준다는 말이다. 순진한 낙관주의자는 통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든 의미를 찾든 실천해야 한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