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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Mar 16. 2019

대통령의 욕조/ 독후감28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 가치 있는 물건들이 모두 다르다. 절대적인 수치나 금액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모나미 볼펜 한 자루의 금액은 얼마 하진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하셨던 볼펜이라면 나에겐 더욱 큰 가치로 느껴질 것이다.

 상대적인 가치가 아닌 일반적인 가치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가장 쉽게는 경매제도가 있을 것이다. 가치가 높다면 높은 금액의 입찰가를 얻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별 볼일 없을 것이다.

 그럼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일까?’

그 무엇이 우리에게 유(有) 의미할 때 우리에게 가치가 있다.


 100년 전 몸무게가 150킬로그램에 키가 180센티미터인 미국 50대 남자가 사용하던 욕조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 가치가 없다. 허나, 이 욕조의 주인이 미국 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대통령의 욕조는 그가 당선 후 두 달째에 파나마 운하 건설현장 시찰을 위해 타고 갈 미군함 노스캐롤라이나 호에 주문 제작되었던 목욕통이다. 경매에 나오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 100년 후 2009년에 <Big!>이라는 주제로 열린 내셔널 아카이브( National Archives) 설립 75주년 기념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이 이 욕조의 가치를 지켜주었을까? 그 가치를 지켜주었던 것은 욕조와 같이 공개된 편지 문서 한 장이다. 미군함 노스캐롤라이나 호의 마셜 함장이 욕조를 주문 제작하기 위한 편지 한 장이 이 욕조의 가치를 지켜주었다. 이와 같이 문서는 가치를 보존해 준다. 문서는 가치를 넘어서 한 나라의 역사도 보존해 줄 것이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사들이면서 러시아에게 지불한 720만 달러짜리 수표가 지나간 역사를 명료하게 만들어 주듯이.



 내셔널 아카이브는 ‘국가의 문서를 관리하는 곳’이다. 아카이브( archive)는 한 마디로 보관소를 의미한다. 장소를 말한다. 미국 국가 아카이브의 정식 명칭은 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다. 본부 구실을 하는 워싱턴 아카이 I과 메릴랜드 주 칼리지 파크의 아카이브 II 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 기록물을 모아놓은 아카이브( 대통령 도서관)도 있고 연방정부 행정문서를 모아놓은 아카이브( 연방 기록물 센터 Federal Records Center)도 있다. 대통령 도서관만 열세 곳이고, 연방 기록물 센터도 열일곱 군데나 된다. 대통령이 자기 돈으로 지어 국가에 헌납하고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대통령 도서관이다. 정권교체는 백악관의 문서 이관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기 대통령의 문서가 백악관을 모두 떠나게 되면 다음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매년 15억 장 이상 되는 문서들이 기록되고 보관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 기록의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 깨닫고 누구에게나 열람서비스를 제공한다. 신분증만 가지고 가면 누구든 그 자리에서 출입증을 만들고 열람이 가능하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기록물 열람에 대해서 아카이브는 외국인과 자국민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문서들이 있을까? 극비문서만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열람 가능하니까. 1975년 제너럴 포드 대통령 당시 일본 왕과 왕비를 국빈으로 맞아 베풀었던 백악관 만찬의 자리 배치도부터 만찬 메뉴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내셔널 아카이브나 미국 대통령 도서관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어떤 문서들이 있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NARA를 찾아가는 비용과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기특한 책이다.

노획한 북한 문서들도 있으며 한국전 중 미국 주둔 시에 작성한 보고서들로써 미군사 정보국이 분석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글, 미공보처가 조사한 한국의 ‘다방’에 대한 글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미국이다. 대통령 도서관이 있는 나라도 미국 뿐이니 짧은 역사의 나라로써 새롭게 그들의 역사를 간직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40년 남짓 되는 역사를 가진 젊은 나라가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실천과 방식에 박수를 보낸다. 쿨하게!!

 메릴랜드 주 칼리지 아카이브 II 2층에 예순 넘은 노부인이 아흔이 넘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문서를 찾고 있다. 아카이브 근처 호텔에서 닷새째 머무르는 중이다. 노부인의 아버지는 해군 사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다. 구축함 갑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물기 없는 갑판 바닥에서 미끄러지면서 엉치뼈가 크게 상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동료 병사 중에도 낙상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주위 사람들과 군대 이야기를 하다가 구축함 갑판을 칠한 페인트가 낙상의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페인트의 미끄럼 방지제를 법적 기준치에 맞춰 배합한 것에 대한 유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아버지가 근무했던 구축함의 갑판을 칠한 페인트가 무슨 종류였는지, 그 페인트는 어느 회사 제품이었는지를 밝혀낼 증거 문서를 찾고 있었다.

 

 

 어찌 그런 기록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직접 찾아낼 생각은 또 어떻게 했을까? 찾으려는 문서가 있으리라는 확신,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노부인을 보면서 부러웠다. 그런 생각과 확신을 갖고 있는 그들이 쫌 많이 부러웠다. 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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