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당신을 우연히 만난 그 장소에 가게 되었는지. 10년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와 사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리멸렬한 현실의 이야기뿐이다. 어떠한 환상도 남아있지 않지만 궁금한 이야기들.
했어야 했던 이야기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상황을 겪게 되면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불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신혼 초에 응어리졌던 고부간의 섭섭한 마음들은 십 수년이 지나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며느리는 자식을 낳고 기르고 나이 먹으며 시간이 흐른다. 시어머니도 손주들이 생기고 아들 말고 며느리도 눈에 보이게 된다. 십수 년 동안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그 둘의 마음속 응어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가족 저녁식사 자리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대화하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조금 깊은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 그때 왜 그러셨어요?’ ‘어머머…. 내가 그랬었니?’
‘그럼 넌 그때 왜 그랬니?’ ‘제가요? 제가 그럴 리가요????’
대화가 오간 후 서로 안아주며 마음의 응어리는 풀린다.
살다 보면 서로 대화했어야 했던 그때에 대화할 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 당연히 ‘대화했겠지’라고 주변인들은 생각하지만 누구나 마음에 응어리를 가지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야모토 테루는 이혼한 부부의 하지 못한 이야기를 펜팔 형식으로 쓰고 있다.
처음 글을 접했을 때 ‘도대체 이 대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이상한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이 부부에게는 대화가 필요했다. 이혼을 왜 하게 되었는지, 그땐 왜 그랬는지.
사실 결혼생활 중에 해야 할 이야기를 뒤늦게나마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부였던 인연들은 이것이 마지막 편지라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면서도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둘의 어투는 참으로 중립적이다. 불평을 하는 듯하면서도 불평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니 불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질투를 하는 듯하면서도 질투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니 질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꽤나 자세하게 쓴다. 꽤나 정직하게 쓴다. 그러기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사죄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다.
친구는 미국에 살고 나는 한국에 사는 이유로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본다. 그럼에도 누군가 제일 친한 친구 이야기를 한다거나 물어본다면 그 친구를 생각하는 것이다.
꼭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서 답을 얻듯이 친한 친구 하면 그 친구다.
우린 둘이 밀린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린 제일 친한 친구니까. 그렇지만, 대화만큼 갑자기 하려고 하면 하기 힘든 것도 없다. 처음엔 궁금한 것이 많아 Q&A와 같이 흘러가겠지만 훌쩍 커버린 친구 아이에 관해 얼마나 많이 궁금해 할 수 있을까? 몇 번 보지도 못한 친구 와이프에 관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친구 아이나 와이프 이름을 기억해 대화에 써먹어도 대화는 별반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회사에서 점심 제일 자주 먹는 직원이나 동료와 이야기할 것이 더욱더 많다.
자주 이야기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예전 부부였던 아리마 씨(男)와 가쓰누마 씨(女)는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궁금한 것이 점점 많아진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란 그런 것이 아닐까? 대화란 그런 것이 아닐까? 목적한 바를 얻기 위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서 중엔 이 책이 나에게 이렇게 다가올 줄 몰랐다.
저녁마다 나누는 아이들과의 대화가 값지고 와이프와 이야기하는 앞으로 며칠 간의 가족 스케줄과 5월 가족행사에 대한 상의가 참으로 감사한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