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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Sep 21. 2019

요리사가 너무 많다 / 독후감55

Too Many Cooks

 무협지와 추리소설은 위험하다. 

특히, 자정으로 넘어가는 밤이나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워킹 타임과 맞닿으면 당최 집중력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책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다음 페이지 넘기는 유혹을 감당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버스에서 읽다가 허둥지둥 펼친 책을 들고 겨우 정류장에서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랜만의 추리소설이었지만 여전히 위험하다.




 사람의 기억력은 너무나 헛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6년 전 읽었던 이 책의 내용은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한 조각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나 자신에게 놀라며 다시 한번 새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표지만을 기억할 뿐이다.

반면, 탐정 울프는 15명 요리장들 중 한 명인 로렌스 코인의 중국인 아내의 대화를 기억해 내는 것으로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다. 탐정은 보이지 않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넓히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이를 위해서 만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쉽사리 놓칠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해 내야 한다. 나는 심지어 책으로 그녀의 대화를 읽었음에도 사건의 단서를 찾지도 기억해 내지도 못한다. 나와 울프의 기억력을 자꾸 비교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위해서 피해야겠다.


 울프에게는 아치 굿윈이라는 조수가 있다. 울프의 손발이 되는 인물로 내가 보기엔 특출 난 재주가 있진 않다. 참고로 울프는 140kg의 거구로 움직이는 것보다 주로 생각과 말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 굿윈에게 누구도 반감을 가질 수 없는 특기가 있다면 글을 남기고, 기록하는 일이다. 훌륭한 조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능이다. 우리는 그가 기록하는 굿윈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고 있다. 덕분에 그의 반어법을 베이스로 한 위트 넘치는 문장이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한다.

 ‘어찌나 법석을 떨었는지 누가 보면 우리가 달에 광을 내고 야생 별을 따러 우주에라도 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젠장, 언젠가 내 재치가 휴가 가고 없을 때 재치를 요구하는 날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울프도 나한테 계획을 미리 알려 줘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겠지.’ 등등

울프 씨도 굿윈 못지않다.

 “고맙네, 내가 지금 고문받는 기분이란 건 자네도 알지? 굿윈 군, 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주는 걸로 자네 월급 값을 좀 하면 안 되겠나? 존 건서가 쓴 [유럽 기행]일세.”



 탐정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우리는 의례적으로 셜록 홈스와 함께 영국 런던을 떠올리지만 작가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도 전 세계 미스터리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37년 미국의 커노 스파로 여전히 인종 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링컨 대통령과 어울릴 법한 인종차별의 시대와 탐정 추리소설의 색다른 조합도 새롭다.

 “여기 웨스트 버지니아에서는 깜둥이에게 ‘씨’ 자는 붙이지 않아요. 그리고 누구든 우리에게 와서 이래라저래라………”




 네로 울프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15명의 세계적인 요리장들의 행사에 주빈으로 초대되어 일정 마지막 날 ‘최고급 요리에 대한 미국의 기여’라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그의 연설 제목이 그다지 나에게 와 닿지는 않았다. 

‘과연 미국이 기여한 것이 있을까?’

 울프 씨의 연설문 연습 장면으로 우리는 연설 내용의 일부를 읽을 수 있는데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가 음식에 대한 미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연설 내용을 읽고 있으면 혹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행사의 마지막 저녁으로 준비된 미국식 만찬에 첫 번째 코스인 ‘껍질째 구운 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굴은 향긋한 것은 물론이고 통통하고 맛있어서, 누가 손으로 땅콩과 블루베리를 먹여 주며 키운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나는 책에서 이 문장이 가장 좋고 위트 넘치는 문장이었다. 울프 씨 연설 내용의 핵심을 적당히 혼합하며 굴요리를 극찬한 표현이 참으로 좋았다. 다른 독자들도 책을 통해 확인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소설은 1930년대에 쓰였지만 내가 정작 읽은 책은 2013년 한국어 번역본으로 독서의 즐거움에 더해서 책 자체의 작은 디테일, 표지와 디자인에서도 즐거움을 더한다.

오랜만의 위험한 추리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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