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한번 해봄'
준 형아~! 아까 전에 무슨 일 때문에 아빠한테 혼난 거야? 내가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잠들었잖아.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눈을 살짝 뜨니까 아빠한테 형아 혼나고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잘 못 했어?
빈 언제? 언제 봤어? 내가 왜 혼났지? 나도 한숨 자고나니 왜 혼났는지도 모르겠네.
준 기억 안 난다구? 웃겨. 형아 조금 전에 저 네비게이션 막 만지다가 아빠한테 계속 혼나던데. 목적지 정해놨다고 해도 형아가 계속 만지니까 아빠는 계속 혼내고. 내가 똑똑히 봤거든. 이래도 기억 안나?
빈 아하~ 이제야 기억난다. 그랬었지. 근데 왜 난 잊고 있었지?
준 그러니까 계속 혼났지. 잊고 또 만지고 또 만지고 하니까. 왜 그런거야? 혼날 줄 뻔히 알면서...
빈 왜 그런거냐구?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어. 화면에 버튼이 많은데 아빠는 계속 눌렀던 버튼만 누르는거야. 아빠가 계속 누른 버튼을 누르면 무슨 화면이 나오는지는 알았거든. 근데 다른 버튼을 누르면 무슨 화면이 나오는지가 너무나 궁금했어. 그래서 그냥 누른 것 뿐이야. 잘못된 건가?
준 궁금해서 누른 것은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아빠가 설정해 놓은대로 안되니까 화난 거겠지. 형아도 알다시피 아빠가 길을 잘 못 찾아가잖아. 그건 형아가 이해해.
빈 그러면 다행이구. 하나씩 누를 때마다 다른 화면들이 나오니까 엄청 신기하고 재밌는 거 있지. 아직 못 눌러본 버튼이 있어서 언제 눌러볼까 고민 중이야. 아빠가 또 화내겠지?
준 아빠가 화내도 형아는 또 할꺼면서. 근데 형아~! 내가 보기에는 형아가 아빠보다 네비게이션 더 잘 다루던데. 다양한 화면들을 자유자재로 마음대로 막 바꾸더라구. 형아 말대로 아빠는 봤던 화면만 계속 보거든. 잠에서 깨어 얼핏 들었는데, 그렇게 혼내던 아빠도 나중에는 “어떻게 이런 기능 알어?”하고 묻던 것 같았어.
빈 응 맞어. 너 잘 들었네. 아빠가 처음에는 이상한 화면이 나오니까 나를 혼내더니 내가 바로 원래 화면 나오는 버튼을 눌렀거든. 이렇게 몇 번하니까 아빠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이런 기능 어떻게 아냐고 묻는거야.
준 그래?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빈 그냥 한번 해봤다고 했지. 한번 눌러봤다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원래 화면이 돌아왔거든. 그래서 알게 되었지. 저 버튼은 원래 화면으로 돌아오는 버튼이라는 것을. 이후로 너무 재미있어서 화면 색깔도 바꿔보고, 자동차 종류도 바꿔봤지. 솔직히 그리 걱정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구.
준 맞아. 아빠가 화내는 것을 봐서는 잘 못 누르면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데, 마치 차가 갑자기 멈춘다거나 네비게이션이 폭발한다거니나... 뭐 이런거 말이야. 다른 화면으로만 바뀔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구 빈 근데 한번 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아빠처럼 다른 것 안 하고 계속 하던 것만 하면 잘 몰라. 다른 버튼이 왜 저 위치에 있는지? 저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 잘 몰라. 그냥 필요없고 편하니까 원래 사용하던 것만 계속 사용하는거야. 그것이 아빠가 나보다 네비게이션에 대해 더 모르는 이유지. 나는 그냥 한번 해봤고, 아빠는 안 해봤고.
준 그래 형아 말이 맞네. 한번 해봄과 안 해봄의 차이~! 형아 멋있다. 아빠보다 더 잘 알다니. 역시 나의 형아야~!
빈 준아 너 저번 여름에 우리 가족 모두 수영장 갔을 때 처음으로 미끄럼틀 탔었잖아. 그 때 기분이 어땠어? 아빠가 괜찮다고 해도 처음에는 무섭다고 안타는 것 같던데.
준 아, 높은 곳에서 꼬불꼬불 내려오는 그 미끄럼틀? 솔직히 처음에 아빠가 저거 타자고 했을 때 정말 무서웠거든. 너무 높아보였어. ‘만약 저기서 떨어지면...’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근처에도 못 가겠더라구. 나는 절대로 저거 안타겠다고 마음 먹었거든. 형아도 알잖아. 나 높은 것 엄청 무서워 한다는 거.
빈 그럼 알지. 너 놀이터에 있는 작은 미끄럼틀도 처음에 타는 것 엄청 무서워했잖아. 근데 수영장에서 처음에 그렇게 무서워하던 미끄럼틀 나중 되니까 아빠 손 붙잡고 계속 타러 가더라. 왜 그랬어?
준 처음에 엄청 무서웠거든. 그래서 절대로 안타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나랑 비슷한 아이들도 엄청 재미있게 타더라구. 순간 생각했지. ‘저게 재밌나? 아래에서 보기에는 엄청 높아 무서워 보이는데 위에 올라가면 안 무서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 일단 아빠 손잡고 위에 한번 올라가보기로 결심한 거야. 혹시 위에 올라가서도 무서우면 다시 내려오면 되니까.
빈 위에 올라갔어? 올라가니까 어땠어?
준 올라갔는데...더 무서운거야. 아래에서 볼 때보다 더 높아보였고...흑~ 그 때의 기분은 완전 별로였어. 같이 올라가자고 한 아빠가 너무 밉더라구. 위에 올라가자마자 다시 내려오려고 계단을 보았는데 올라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 내려가겠는거야. 올라 올 때는 잘 몰랐는데 아래를 보고 내려가려니까 더 무서울 것 같았어.
빈 그랬었구나! 그래서 어떻게 했어? 계단으로 내려온 거야? 미끄럼틀 타고 내려온 거야?
준 어쩔 수 없이 미끄럼틀 타고 내려왔어. 아빠랑 같이.
빈 무서웠는데? 너 대단하다
준 근데 한번 해보고 나니까, 이상하게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거야. 또 하니까 또 해보고 싶어지는 것 있지.
‘이거 뭐지?’ 분명히 하기 전에는 무서웠었는데 하고 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 오히려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어. 왜 그런지 형아는 알아? 난 그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어.
빈 너가 맞아. 원래 그래. 나도 너처럼 그랬었거든. 아기때에는 놀이터에 작은 미끄럼틀 조차도 무서워보였는데 해보니까 정말 재미있었어. 수영장의 미끄럼틀도 너무 높아 보였거든. 근처에도 가기 싫었어. 근데 한 번 해보니까 무서운 마음은 물러나고 그 자리를 재미가 차지했었어.
준 형아도 그랬어?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무서운 마음이 순식간에 재미로 바뀔 수가 있지.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빈 정확히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책에서 봤는데... 한 아이가 밤에 자다가 깨었어. 문 옆에 보이는 검은 커튼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거기서 아이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나온거야. 그랬더니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고 재미있어했어. 그러더니 그 강아지랑 잠을 안자고 그 놀이만 하는거야. 커튼 뒤에 강아지가 숨고 나타나고 숨고 나타나고...
준 무슨 말이야? 그 이야기가 이거라 무슨 관련이 있어?
빈 밤에 잠에서 깬 그 아이가 커튼을 보고 왜 무서워 했는줄 알아? 무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운 거야. 근데 커튼 뒤에서 강아지가 나타나니까 무서웠던 마음을 순식간에 사라지고 재미로 바뀐거야.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밤에 커튼을 보더라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신나했지.
준 아~! 그렇구나. 무섭다고 생각하며 무섭고, 재밌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는 거네. 형아랑 나처럼, 높은 미끄럼틀을 보기만 할 때에는 무섭다고 생각해서 무서웠고 실제로 한번 타보니 안 무서웠고 오히려 너무나 재미있었고. 그 때부터는 미끄럼틀만 보면 신나게 달려가는구나.
빈 그래, 맞어. 그러고 보면 무서움이라는 녀석은 겁쟁이 같아. 그렇게 힘쎄다고 우리를 무섭게 하더니 한번 해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니 말이야? 너 무서움이라는 녀석 봤어?
준 아니, 한 번도 못 봤어. 아기 때도 못 봤고 지금도 안보여. 원래 없나봐. 단지 생각만하니까 무서운가봐. 한번 해보면 금새 사라지고. 무서움을 없애는 방법이네. 한번 해보는 것. 앞으로 무서움이 생기면 한번 해 봐야겠다. 빈 그렇네. 똑똑한 내 동생~! 무서우면 한번 해보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한번 해보는 순간 무서움은 우리한테서 도망칠테니까. 우리가 무서워서...
오늘의 위대한 여정에 한발자국을 내딛은 빈이와 준이 형제는 무서움의 실체를 알았네요. 아니, 무서움이 실체가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알았네요. 무서움을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번 해봄이라는 것을 알아 냈구요. 이제 두 형제의 앞날에 무서움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두 형제가 무서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