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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Oct 16. 2021

(10) 같은 방 안에서


 


같은 공간, 기억 하나


 현재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방은,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시기에 따라 가구가 조금씩 달라지고, 교복을 입었다가 사복을 입고, 이제는 정장을 입게 되는 등의 변화도 있었지만, 가끔 조용한 방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과거의 제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 방에서 살았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이 방은 저에게 여러 가지 기억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처럼 강렬하게 남은 기억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기억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뭔가를  몰입해 열심히 하였고, 결과를 받아보기 전부터 이유모를 뿌듯함과 만족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할 이야기 또한 제가 이 방에서 경험했었던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어떤 이유로 친했던 친구들과의 사이가 서먹해지고난 뒤, 저는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에는 큰 재주가 없었던지라 시험기간에 반짝 집중해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제 성적이 급상승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수학 성적은 정말 오르지 않아서 2학년 무렵엔 40점대의 성적을 받고 집 베란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영어와 수학 성적이 나쁘다 보니, 제가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흔히 암기과목이라고 불리는 과목들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전과목 평균 점수를 가지고 등수가 매겨졌는데, 여기서 저는 이론 위주로 출제되는 사회나 미술과 같은 암기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면 낮은 영어 수학 점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미술시험이 있기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날은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밤을 새워 공부했던 날이었습니다. 지금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법한 일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인상파 화가의 미술작품 이름과 판화의 종류 등에 대해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여담이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어머니가 꽤 늦게까지 제 방에서 같이 있어주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제가 공부하는데 부모님이 잠들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참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평소였으면 잠이 들었을 시간에 계속해서 같은 내용을 보고 쓰며 외운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이 되었을 무렵, 저는 도저히 버티지 못해 이제 그만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을 때, 저에겐 왠지 모를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었습니다. 처음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풍경이었는데, 어느새 푸르스름한 색의 하늘 아래 하나둘씩 불이 켜진 다른 집 창문들이 창밖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었던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와 나도 밤새워 공부할 수 있구나!'같은 단순한 생각에서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실제로 중요한지, 그것이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를 떠나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실제로 했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를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마음으로 이어졌고, 이 목표를 위해선 밤을 새워서라도 암기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되어 결국 실제로 밤새워 공부를 했으니, 저는 자신이 해야겠다고 믿고 있는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데서 만족감을 느낀 것입니다.


같은 공간, 다른 행동


 최근에 별 이유도 없이 밤을 새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서였을까요, 저는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노트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검색해보며 자는 시간을 넘긴 채 생각에 빠져 방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밤을 새웠던 것에 좋은 추억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는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것보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많았던 것 때문인지, 요즘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 그날도 십수 년 전 중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아침이 가까워진 새벽 무렵 창밖을 보았습니다.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이 순간 제가 창밖을 통해 바라본 푸르슴한 기운이 감도는 새벽의 모습은 제가 중학생 시절 보았던 그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옛 생각이 나는 바람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가, 같은 방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데도 이렇게 감정이 달라질 수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중간고사를 열심히 준비하던 그 시절처럼, 앞으로의 저는 뭔가에 온전히 몰입해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왠지 목표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 들었습니다. 


목표 하나,
새벽에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뿌듯해지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가능하다면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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