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노래를 외워둔다는 것에 대하여
몇 개의 노래를 외워둔다
이렇게 외워둔 노래는
삶에 즐거움을 더해준다
신입사원 장기자랑
예나 지금이나 저는 회식자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장기자랑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상하는 것도 싫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시절에는 빼지 못하고 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저 역시 신입사원 장기자랑 시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장기 같은 것은 없다 보니 노래나 부르라는 부장님의 말에 겨우 발라드 노래를 한곡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요,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부장님은 저를 보시곤 첫 순서부터 발라드 부른 건 네가 처음이라며 안쓰럽게 바라보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저와 동기였던 친구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경험이 많았는지 친구는 자신이 부를 노래의 번호를 이미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기는 오늘을 위해 무대에서 입을 양복도 따로 챙겨 왔었습니다. 제 친구이자 동기가 불렀던 노래는 바로 나훈아의 [잡초]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gIh_CjEBAQ
동기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위의 영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보고 나니 따로 양복을 준비해온 이유도 알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제스처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는 동기의 말을 나중에 듣고 나니, 역시 임원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감탄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가 여담 삼아 말씀드린 일화이긴 하지만, 저 역시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쌓아간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가 필요한 순간에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몇 개 외워두는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후에 노래를 몇 개 외워두었고 살면서 나름대로 잘 활용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노래가 깃든 산책
예전 글에서 말씀드렸듯, 저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은 기분이 좋아져 듣고 있는 음악을 따라 부르거나 생각이 나는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가사를 외워두지 않았을 때는 '음음음~'하며 흥얼거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 몇 가지를 가사까지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외웠던 노래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qxLHIHpimE
저는 이 노래의 전주로 나오는 클라리넷 소리가 좋아합니다. 또 꾸밈없는 목소리와 가사를 듣고 있으면 왠지 제 마음도 풋풋 해지는 기분이 들어 또 한 번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사를 외우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 곡이 수록된 유재하 1집의 모든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잘 부르진 못하지만요. 최근엔 [그대 내 품에]라는 노래도 산책하며 자주 부르고 있습니다.
유재하만큼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동물원의 [혜화동]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K8T60cU0g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제가 어릴 때 함께 놀았던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만큼 그리운 것은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으로도 충분히 100점짜리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이 바로 저의 어린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도 소개해드렸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도 제가 좋아하는 곡이라 가사를 외웠습니다.
확실히 가사를 포함해 노래를 부르며 산책하고나서부터 저는 산책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산책을 위해서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노래를 부르려고 산책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여러 활동을 할 때 그 일들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곤 합니다.
위로의 노래 한곡
미리 외워둔 노래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의 응원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노래 외우기를 시작한 뒤로 술만 마시면 자꾸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주로 혼자 마시다 보니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술을 마시고 나서 부르는 노래들의 특징은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래로는 이한철의 [슈퍼스타] ,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의 [축배], 어쿠스틱 콜라보의 [응원가] 등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7gs6rohEl8
https://www.youtube.com/watch?v=nrw1G3edJyo
https://www.youtube.com/watch?v=QS9xV54-bPQ
아마 이런 노래들을 제가 좋아하는 것은, 저 또한 혼자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이 많다 보니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는 친구와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왜 노래를 불렀는지는 '부르고 싶었다'는 것 외의 이유는 없었습니다. 이 날 제가 불렀던 곡은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aA3YZ6QdJU
친구는 제가 노래 부르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을 듣는 것처럼 저는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노래를 중단하고 그냥 웃었는데요, 친구도 같이 웃어줬습니다. 그리곤 그냥 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니 가사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서투르게 부르는 게 웃기고 재미있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고 말을 말해줬습니다.
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갔는데요, 이후에도 저를 만나면 꼭 이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제가 곤란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친구가 처했던 상황이 꽤 힘든 상황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의 노래 한 곡이 친구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삶을 채워줄 노래
저는 노래의 가사를 하나씩 외워갈수록, 저의 삶에 하루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쌓여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노래를 외운다는 것은 시험처럼 누군가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부담 없이 몇 번 따라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울 수 있었습니다.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쌓여갈수록, 제가 맞이하는 다양한 순간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새로운 마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부모님의 생신 때는 노래를 불러볼까, 지금 배우고 있는 피아노로 이 노래를 한 번 연주해볼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에겐 이런 생각이 새롭게 떠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즐거워졌습니다.
노래뿐 아니라 시와 같은 운율이 있는 문장, 혹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대사와 같은 문장을 외워보는 것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외운다는 것에 대해 암기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외워가는 것은 분명 삶에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