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은 내겐 이 것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찾아온다
지금 가고 있는
그 길, 그 목표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수능 풍경
주말이면 저는 집 근처의 스터디 카페에 와서 글을 쓰거나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늘어지는 것 같아서 제가 대안으로 찾은 방법인 것이죠. 요즘의 스터디 카페는 옛날의 독서실과 같은 공간이 아닙니다. 독서실보다는 카페와 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 학생 시절에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성적이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될 만큼 만족스러운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 요즘의 스터디 카페입니다.
꽤 오랜 시간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공부하는가에도 괜히 관심이 생기는데요, 제가 있는 곳은 대부분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수능시험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는 별개로 저는 수능시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교육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수능시험의 효과와 공평성에 대해선 의견을 내기엔 지식이 부족하지만, 제가 수능시험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폐지하자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년 어린 친구들이 수능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능시험이 사회의 형평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매년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 저는 국가가 이 시험제도를 계속해서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수능으로 삶을 마감한 어린 친구들의 남은 인생에는 수능 성적보다 훨씬 멋지고 설렘 가득한 미래가 펼쳐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어쩔 땐 이 스터디 카페에 다니는 수험생 분들에게 이런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말씀드릴 내용의 대부분이 이 말에 담겨있기도 합니다.
수능을 망쳤다고 여러분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을 좀 못 보더라도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수능은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불안의 원인
저는 사람의 마음에 불안함만 없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불안함이라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쩌면 종교가 생긴 이유 또한 사람의 마음속 불안함을 줄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누군가가 언제나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은 마음에 평안이 깃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믿음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주니까요.
이처럼 사람의 불안한 마음은 믿음을 통해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비단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잘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믿음은 자신감이 되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라면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만큼 열심히 할 것이며, 결과도 그에 비례해서 잘 나올 것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남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조차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은 맞는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에 대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과 망설임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사정은 좀 낫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자신의 길을 정하지도 못한 경우인데요, 이때 사람의 마음은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어제는 괜찮아 보였던 그 길이 오늘은 별로인 것처럼 느껴지고, 내일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진로가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선택지를 정해놓고도 계속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우연한 계기로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한 우물만 팔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 시간은 흘러가고 마지못해 나쁘지 않아 보이거나 남들이 다들 하는 선택지를 나도 따라 해 보면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대해 고민과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길은 여러 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했거나 자신에게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생각을 바꿔 처음부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유독 진로나 직업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첫 번째 선택을 하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제가 첫 직장과 첫 직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드리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그것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목표는 내가 가진 여러 가지 목표 중 '가장 중요한'목표일 뿐이지 '단 하나의'목표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원하는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여러분의 인생이 갑자기 끝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을 살면서 제일 중요하고 필요한 일만 하며 살고 있던가요?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재미있게 잘 살고 있습니다. 핵심은 꼭 우선순위의 가장 첫 번째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다음 순위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개라는 것은 한 가지 길을 가는 방법도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수능 공부를 했지만 의과대학에 입학할 성적을 받지 못해 상심한 친구가 있다는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친구에게 우선 몇 가지 질문을 해볼 것입니다.
저는 먼저 정말로 의사가 하고 싶다면, 꼭 20살에 의대를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의사 되는 것을 원한다면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빨리' 의사가 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추가로 저는 꼭 '한국'에서 의사가 될 필요가 있냐는 질문도 해볼 것입니다. 이 방법은 저도 몰랐었는데, 최근에는 일본의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 약학대학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일본어가 된다는 전제 하에선 입학시험이 한국보다는 수월하다는 이유 때문인데요, 외국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분들 또한 한국의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게 되면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에 최근엔 이 방법을 통해 의사가 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저는 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30살에 다시 수능을 봐서 한의대에 들어갔던 제 선배 이야기, 자녀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자 할 게 없어져서 공부해 로스쿨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분 등등,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서 지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저는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즉, 19살의 어린 친구가 가진 정보는 오직 재수 없이 수능시험을 잘 봐서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지만,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목표를 이루는 데 나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인 것입니다.
불안의 치료제는 경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렸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불안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나면 자신의 적성과 선택하고자 하는 길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며, 이미 많은 경험을 해보았기에 한 가지 일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되니까요.
어쩌면 제가 백수로 지내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도 경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공기관에서 일해봤고, 유망하다는 사기업에서도 일해봤지만, 저는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도망치는 것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른 나이부터 다양한 직장에서 일을 해보고 나니, 저는 일을 선택함에 있어 큰 망설임이 없습니다. 안정적인 공공기관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내가 싫어하는 직장상사의 정년도 보장되어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월급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일밖에는 하지 않았지만, 정작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닌 사람과 조직 문화, 굳어버린 업무처리방식에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지금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지나간 과거에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불안과 아쉬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니까요. 별 걱정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뭐라도 하나 더 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불안을 없앨 수 있는 최고의 치료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 수능시험을 치를 이 친구들의 마음에도 이런 저의 생각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나마 이 친구들의 인생에 다양한 목표와 길이 열리길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