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노동, 그리고 내세

인류의 유쾌한 ‘일장춘몽’ 생존기

by 아침햇살

역사가 윌리엄 듀란트가 “문명은 착취 없이는 시작되지 않았고, 노예 없이는 유지되지 않았다”고 했을 때, 나는 잠시 내 월급 명세서를 들여다보았다. ‘아, 나도 문명 유지의 한 톱니바퀴구나!’ 라는 감탄과 함께, 인류의 역사가 그저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이 일한 걸 슬쩍 가져다 쓰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수렵과 채집에 바빴다. 과일 따먹고, 배부르면 자고, 피곤하면 또 자고. 이 얼마나 평화로운가! 하지만 이런 삶에서는 문명이 생길 리 없다. 문명을 만들려면, 남의 것을 슬쩍 빼앗아 와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철학도 하고, 과학도 하고, ‘문명인’ 흉내도 내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 문명보다 더 발전했다는 미노아 문명도, 알고 보면 해적질 덕분에 바다 한가운데서 꽃을 피웠다. 대영제국?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해서 ‘문명’이란 걸 자랑했다. 결국, 인류 문명의 이면에는 ‘남의 것 뺏기’라는 소박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거대한 군함이 바다를 가를 때, 그 밑창에서는 노예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노를 저었다. 오늘날엔 ‘블루칼라’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누군가는 12시간씩 일하고, 누군가는 저임금에 허덕인다. 몇천 년이 흘렀지만, ‘역사’라는 드라마의 주연은 여전히 피곤과 후회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노동을 하고, 배가 부르면 모험을 꿈꾼다. 노동은 반복의 연속이고, 모험은 반복을 벗어난 예측불허의 사건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노동과 모험을 반복한다. 수렵시대에는 사냥이 노동이자 모험이었지만, 오늘날엔 노동과 모험이 분업화되어, 사무실에서 엑셀 파일을 사냥하고, 주말엔 ‘모험’ 삼아 캠핑을 떠난다.


여기에 인간만이 가진 욕심과 미움이 ‘모티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가세한다. 조금 더 먹고 살기 위해, 조금 더 멀리 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 경쟁하고, 때론 미워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역사의 단면을 잘라보면, 언제나 피곤과 후회가 함께한다. 노동하다 피곤하고, 모험하다 후회한다. 저녁에 샤워하고 밥 먹고 TV를 켜면, 대다수 프로그램이 살인으로 시작하거나 끝난다. 인간의 모험 본능이 TV를 통해 대리만족되는 셈이다.


성서도 이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창세기에서부터 심각하게 지적한다. 가인이 동생을 죽임으로써 문명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가 피와 눈물, 그리고 약간의 블랙코미디로 점철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제 문명이나 역사를 생물학적 레벨로 내려가 보자. 우리가 먹는 비프스테이크는, 소가 만든 단백질을 인간이 착취하는 것이다. 깊은 의식 속에서 우리는 이 생존 방식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신호를 받지만, 이미 삶의 즐거움과 슬픔을 경험한 이상, ‘먹고사는 게 인생’임을 받아들이며 오늘도 밥을 먹는다.


이렇게 피곤과 후회로 물든 역사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다는 사실에 가슴 한켠에 비애를 품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부지런히 살아가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아름다운 총천연색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일장춘몽”이라 했다. 삶이 길든 짧든, 결국 봄날의 한낮 꿈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산 너머, 바다 너머, 혹은 인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세에 대한 궁금증은 마르코 폴로나 혜초처럼, 누군가는 직접 가서 보고 오기도 한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뭔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꾸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손톱을 깎아도 내가 줄어들지 않듯, 7년마다 세포가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몸인가, 의식인가, 아니면 그 복합체인가?


이런 고민 끝에, 인생을 활과 화살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아직 활도, 화살도 준비하지 못했고, 어떤 이는 활만 준비했다. 또 어떤 이는 활과 화살을 모두 갖췄지만, 화살이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연습 끝에 언젠가 화살이 멀리 날아가는 경험을 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바이러스처럼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야 활성화된다. 예수는 이미 그려진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길을 그리며 걷는다. 우리는 그 그림 속으로 초대받은 실과 같다.


결국, 인생이라는 활을 쏘아 시간의 벽을 넘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노동이자 모험이고, 지치지 않는 유일한 동력이다. 예수는 이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내세라는 시간의 벽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그림을 그려간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피곤과 후회, 그리고 약간의 유머를 곁들인 사랑으로, 인생이라는 ‘일장춘몽’을 살아간다.


“문명은 남의 것을 빼앗는 데서 시작됐다. 하지만 인생은, 남의 것을 빼앗든, 내 것을 빼앗기든, 결국 한 편의 꿈이다. 그러니 오늘도 유쾌하게, 그리고 조금은 뻔뻔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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