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파는 신, 혹은 신을 닮은 상품

by 아침햇살

살다 보면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오늘도 인간답게 살아야지” 마음먹지만, 지하철만 타도 그 마음은 금세 접히고 맙니다. 치열한 경쟁, 끊임없는 비교, 신조차도 검색 순위에 올라야 존재감을 얻는 이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듯합니다. 아니, 인간은 이제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팔아야 살아남는 존재'랄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도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신이 우리를 창조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신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내 욕망을 투영하고, 내 기대를 반영해서 만든 신.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인간이 신을 만든 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죠. 전능하고 자비로운 신이 사실은 내가 되고 싶은 초강력 자아의 현현이라면, 그 신은 결국 '가장 잘 팔릴 만한 이미지'일뿐 아닐까요?


이래서 지금의 기독교는 역설적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역사를 구원해야 할 종교였던 기독교가 어느새 역사 속 상품 하나처럼 되어버린 겁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팔아먹기 좋은 포장지 안에 예수님을 넣고 판매하는 셈이죠. 십자가는 고통이 아니라, 로고처럼 소비되고, 교회는 고백의 장소보다 콘텐츠의 플랫폼이 더 익숙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신이 원하던 일이었을까요?


예수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끌어안고 싸우기 위해 온 분입니다. 전쟁 속에서 평화를 말하고, 회의 속에서 믿음을 부르짖고,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끌어낸 분.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분이 전지전능한 영웅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렵고, 떨고, 땀 흘리며 죽음을 준비하는 인간이었다는 사실. 바로 그 고뇌와 모순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요?


한마디로 말해, 예수를 닮으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단 하나의 예수는 될 수 없지만,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과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믿지만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지만 또 믿어야만 하는 사람. 그래서 늘 고민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은 복종하는 사람 말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믿는다는 건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두렵고 흔들리지만, 그래도 그 말씀 앞에 복종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현대 교회가 해야 할 일도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말 대신, 인간적인 따뜻함 하나 끼얹는 것. 엄청난 깨달음 대신, 절망 속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결단처럼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눈먼 장님이 더러운 흙으로 세수를 하다 눈을 뜬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이성으로는 말도 안 되는 신앙에 얼굴을 묻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살아갈 테니까요.


오늘도 자본이 지배하는 이 세계는 우리에게 ‘잘 팔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잘 팔렸기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길은 아마 오늘날 가장 팔리지 않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덕분에, 아직 이 세계는 인간적인 울림을 전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스스로 묻기를 바랍니다. 나는 과연 신을 믿는가? 아니면 원하는 상품처럼, 신을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정직하게 흔들릴 수 있는 용기, 어쩌면 그게 우리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는 첫 발걸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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