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먼지가 보이는 아침'
세 번째 아이.
서인의 이야기.
산꼭대기에 있던 중학교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지어 놓았는지,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의 세 교실은 일 년 내내 빛이 들지 않고 오른쪽 세 교실만 바깥으로 향한 창문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지 않아 왼쪽 교실에 배정이 된 아이들은, 일 년 내내 푸르스름한 형광등 아래서 바깥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고 자라야 했다. 3년을 내리 창이 없는 교실에 배정되었던 내가 키가 덜 자란 이유가 그 교실 때문인 것 같다고 궁시렁대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리가. 그럼 난 또 발끈해서 말한다. 진짜라고요.
촌지를 좋아한다 소문난 담임은, 반장인데 육성회에 들지 않겠다는 나를 꽤 괘씸해했다. “아빠가 학교에 그렇게 큰돈 낼 필요 없다고 했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은근히 미움받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뭐 어쩌겠나. 결국 150만 원짜리 육성회비를 낸다던 친구를 나 대신 학생회에 넣어두고, 나만 보면 짜증을 내던 담임이었지만 막상 일을 시킬만한 사람은 없었는지 뻔질나게 불러대곤 했다. 한심한 어른들을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니 다음 학년에는 좀 더 어른다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이서인이라고, 오늘 전학생이 새로 올 텐데, 당분간 네가 짝꿍을 하면서 좀 살피도록 해."
"네"
"학교 안도 좀 알려주고, 애들하고 잘 지내게 좀 지켜봐."
"네"
돌아 나오는 내 뒤로 교무실 안 선생님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아, 그 강남 전학생 오늘 와요?"
"네. 아빠가 학원한다는데, 꽤 크다나.. ?그런데... 왜 이리로 전학 오는지 모르겠네."
강남이라는 곳이 선생님의 이야기로 짐작하건대 여기보다 좋은 동네인가 보다 하며 이 동네로 올 이유가 없는 그 아이는 왜 올까 궁금해 하며 교실에 가져다 두라는 채점된 숙제 더미를 한가득 들고 교실로 향했다.
'이미 2학기인데 전학생이라....'
태어날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은 이 동네에서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입학 전에 온 나도 이방인 딱지를 떼는데 족히 반년은 걸렸었다. 뭐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들은, 그다지 그들에게 위험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테스트했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기도 애매하고, 안 하자니 어딘가 억울한 상황들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시간 속에 무뎌진 아이들은 울타리를 내리고 나를 그 안에 들여놓았다. 물론 그것도 마냥 다 편해진 것도 아니었다. 가고 싶지 않아도 가자하면 함께 따라가야 하는 화장실 투어도 귀찮았고, 매점은 또 왜 그리 자주 가는지. 허나 시간으로 익숙해진 이너서클은 생각보다 꽤 단단해서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며 한두 번 빠져도 내 나름의 동굴에서 살아도 되도록 아이들은 적당히 친절한 무관심의 영역에 날 놔둬주었다. 전혀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 편안했다.
그래서 새로운 전학생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나도 아직 완전히 익숙지 않다 싶은데 뭘 챙겨주라는 건지. 간단히 교실들과 매점의 위치나, 내일과 이번주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안내해 주고 찬찬히 살펴보니 나와 이 친구의 공통점을 찾기는 좀 어렵겠다 싶었다. 흔치 않은 남자 같은 매우 짧은 쇼트커트에 뿌리부터 끝으로 갈수록 진해지는 보라색. 와중에 공들여 한가닥 한가닥 헤어 젤로 가지런히 붙인 핀을 꽂은 앞머리. 한껏 줄인 교복 윗도리와 반대로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교복 치마까지. 이미 학교 안에서 이렇게 입고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낯선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기같이 동글동글한 이 새 친구의 이목구비와 한껏 어른스러움을 뽐내는 스타일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한 일주일 즈음 학교생활이 지났을까. 새로운 전학생이 집에 놀러 오지 않겠냐며 반 아이들 몇을 초대했다. 짝꿍이자 학교생활 가이드를 담당중이던 나도 초대되었는데, 가겠다고 하니 하교시간에 맞춰 아버지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와계셨다.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라는데, 힘들다며 굳이 데리러 오신 서인이 아버지 차는 나까지 중학생 여자아이 넷이 타고 충분히 넉넉한 크기였다. 그렇게 도착한 언덕위의 벽돌집은 한눈에 보아도 담벼락이 길었고,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도 생소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더 커서 놀랐다. 동네 친구들의 집에서는 본 적이 없던 족히 10명은 둘러 앉을만한 소파를 보며 '강남'이라는 동네는 다 이런 건가 생각하며 집을 구경하고 있는데, 무언가를 발견한 혜진이 이리 와보라며 손짓했다.
"가족사진인가 봐."
장식장 안에 놓여있던 작은 액자 속 사진 속에는 주방에서 친구들을 위한 간식을 준비하고 있는 아버지와 서인이. 그리고 서인이의 오빠인 듯한 남자아이가 하나. 그리고, 이 모두와 참 닮아 있는 엄마까지 네 가족이 앉아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가셨지?'
그러고 보니 문득, 보통 엄마가 계실 시간에 안 계시다는 것이 의아하다 싶었는데 물음표가 꼬리를 이으려는 찰나, 사진을 구경하고 있던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모두 주방으로 향했다. 물방울이 아짖 맺혀있는 귤 한 소쿠리와, 팥 빵과 소보로 빵을 쟁반 가득 내놓으시는 아버지는 딸이 새로 집에 데리고 온 친구들을 살피는 눈치셨다.
"우리 서인이, 잘 부탁한다. 아저씨가 학원을 해서 서인이랑 시간을 많이 못 보내거든. 자주 놀러 와라."
"아빠, 그만해. 아 얼렁 저리 가."
다정한 아빠의 간지러운 인사말을 못 견디겠다는 듯이 등을 마구 떠밀어 보내는 서인이 아버지는 그 후에도 두어 번 우리는 또 초대하셨고, 반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내게 몇 번인가 따로 전화도 주시며 딸이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를 물으시며 자주 놀러 오라는 인사도 잊지 않으셨다. 하지만, 가까운 듯 먼 거리를 유지하던 서인이와 나의 관계도 결국 서인이가 비슷한 패션 스타일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한층 더 타이트한 교복으로 거듭나며 한층 옅어졌고, 서인이의 눈썹이 친구들을 따라 반토막이 나면서 우리가 나눌만한 이야기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학교의 많은 과목들 중, 도무지 왜 이걸 배우는데 시간을 써야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단연 1등은 '가정'이었다. 어차피 대학 입시에는 써먹지도 못하는 과목인데,늘 이해가 가지않는 딴소리를 늘어놓는 윤 선생님의 수업은 단연 최악이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이 순간이 과연 진짜 나의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까 생각하며 노트 아래 보이지 않게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풀고 있던 중, 한 손에는 단소를 들고 분명 역사시간도 아닌데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대해서 말하던 선생님의 이야기 중 귀에 거슬리는 단어가 들렸다.
"삼전 백화점이 무너진 것도 다... 이 빨리빨리 때문이라는 말이지."
"선생님, 삼전이 아니라 삼풍인데요."
대한민국이 다 아는 사고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시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생각하며 정정했다 생각한 그 순간, 어딘가 차가운 분위기가 교실 안에 흘렀고, 참으려 해도 입을 비집고 나오는 흐느낌의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뱃속 어딘가가 쥐어 뜯겨 죽을 것 같은 고통에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써도 너무 아파서 입술 사이로 고통이 비집고 나오는 소리를 그날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날,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서인이가 강 건너 먼 곳으로 전학을 온 것도, 사진 속 엄마와 오빠를 우리가 본 적이 없었던 이유도, 모두 다 그날 무너져 내린 백화점 때문이란 것을. 그리고, 선생님의 잘못된 단어를 정정해 주려던 나의 입에서 나온 단어 한마디 '삼풍'이 애써 참고 있던 서인이의 눈물둑을 터뜨렸다는 것도.
미안하다고, 네 아픈 곳을 일부러 건드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 뒤로 서인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늘 어울리는 친구들과 한데 뭉쳐 돌아다녀 따로 다가가 말을 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런 용기를 낸다고 해도 서인이가 용서해 줄까 두려웠다. 꺼내지 못한 용기는 시간을 타고 강처럼 흘러가버렸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잊을 수 없었지만, 잊혀져갔다. 그리고 서인이에게도 그럴 것이라 믿고 싶었다.
창이 없던 학교와 비슷하게 바깥 날씨를 가늠하기 힘들도록 블라인드로 창을 가려두는 것이 기본값인 회사는 지하철 역에서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학교를 졸업하니, 언덕을 오를 때 보다 더 많은 지하철의 계단을 거치는 것도 모자라 또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 회사라니. 한 단계를 끝내면 또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는 게임처럼, 끝없이 느껴지는 레벨업이 숨 막히다 생각하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겨우 어깨너비만큼의 존재감을 내세우던 아침,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지소.. 맞지? “
“어머, 혜진아! 진짜 오랜만이다! “
“여긴 어쩐 일이야.”
“아, 나 회사가 이쪽.”
“나는 오늘 병원 오느라. 잘 지냈어?”
“응. 너도? 졸업하고 처음 보네. “
“그러게, 참. 너 소식 들었어? 서인이..”
강남역 앞에 정차한 버스는 내리려는 사람들과 타려 사람들,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져 밀고 밀리는 물결이 파도처럼 오갔다.
“응? 서인이? “
“서인이 장례식에서 너 못본 것 같아서, 모르나 했어.엇, 나 내려야겠다.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 하자. 연락해. “
강남이 어딘지도 모르던 아이는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많은 실수를 하고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며 자라는 동안, 언젠가 어른이 되면 더이상의 시행착오란 없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틀린 문제는 다시 풀어보면 되듯, 인생의 오답노트를 적다보면 언젠가 오답이 생기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런데, 생의 해답은 그렇게 구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누군가의 무심함과 무성의함이 어떤이에게는 이번 생을 건너야만 잊을 수 있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도. 그러니 애초에 없었어야했다. 나의 말도, 너의 상실도.
이번 글의 영감이 되었던, 김소연 시인님의 시.
(시집 <수학자의 아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