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모삼천지교 Sep 23. 2024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네 번째 아이. 

지수의 이야기.


9월이라 이제 선선해졌다 싶었는데, 인디언 썸머인 걸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긴 언덕길에 이미 해가진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더위가 스며있다. 매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언덕길을 걸을 때마다 세상에 내 의지대로 되는 건 내 두 발뿐이구나 생각하며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반복한다. 고개를 떨군 내 눈앞으로 앞코가 까진 검은색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 이렇게 까졌을까. 좋아하던 신발인데. 까진 부분으로 회색 속살을 드러낸 구두가 아프다. 생살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시린지, 너도 알까. 얼마나 더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끝은 어딜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주워 담으며 걷는다.


지하철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지금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재작년 겨울, 수능이 막 끝난 이후의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시험은 그간의 모의고사는 장난이었다는 듯, 갑자기 높아진 난이도로 모두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수능이 끝나고 수험생 노릇을 벗어났다는 환희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해방감에 들떠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시간이 한 달여 남짓 지나며 알코올이 선사하는 알싸함과,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것 같은 혼란함을 즐기고 있던 내게 엄마는 갑자기 내일모레 이사라는 소식을 전했다. 


"나 그날 약속 있는데?"

"넌 따로 할 것 없어. 그냥 나가서 놀다가 저녁에 새 집으로 와."

"알겠어."


내 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 집은, 빨간색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드문드문 붙어 있던 양옥집은 작은 잔디밭도 딸린 2층집이었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세 주고 오래된 양옥집으로 전세를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아빠의 회사와 멀어진다는 것도 모두 아빠에게는 마뜩잖았던 것 같지만 좋은 중학교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후에 진학할 고등학교와도 가까워 입시를 앞두고 등하교에 쓸데없는데 힘 빼지 않는다는 엄마의 주장 끝에 이사 간 집이었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담벼락에 붙여 차를 대야 한다는 것이 아빠는 늘 불만이었지만,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저 좋았고 작지만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사 갈 무렵만 해도 드문드문하던 담쟁이가 빨간 담벼락을 다 가려버릴 만큼 자라는 동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새로운 교복을 맞추고 낯선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밸런스 게임을 하며 내 세계의 가지들을 매일 부지런히 뻗어나갔다. 집에서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스쳐가다시피 하는 일상이 익숙해져 갔다. 


그즈음의 아빠는, 지방에 새로운 사업건이 있어서 당분간 내려가 있게 되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늘 '바쁜 일이다'는 아빠의 말 한마디는 모처럼 예약해 둔 가족 식사도, 휴가도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게 만드는 마법과 같았고 늘 새로운 더 중요한 프로젝트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저 거리가 좀 있구나 생각했다. 다만 아빠가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뒤 이상하게 짜증이 늘어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이 짜증을 내는 엄마와 둘이 집에 있게 되는 시간이 편치 않았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을 활용해 조금 더 마음 편한 독서실로 도망가는 날들이 늘어갔고, 이런 나를 만나러 집이 아닌 독서실 앞으로 아빠가 오는 날들이 더 늘어갔다. 집이 아닌 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매 번 올 때마다 먹고 싶다는 음식이며 옷과 용돈을 쥐어주며 전보다 더 살갑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아빠와는 되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늘 이상하리만치 아빠가 오는 날이면 몸이 아프거나 외갓집에 일이 생겨 같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는 엄마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이미 누군가는 떠나 있는 중이고, 누군가는 무심하게 스쳐가는 날들이 이어지던 우리였기에, 수능 시험 종료와 함께 통보받은 이사도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간 첫날, 낯선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에 익숙한 물건들은 사라지고 못 보던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빠의 LP판들과 오디오, 카메라들과 함께 손님이 놀러 와 여섯이 앉아도 넉넉하던 테이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빈 안방에는 침대만이, 그리고 주방 한편에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식탁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온 가족의 체취가 묻어있던 소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 가죽의 반들거림이 거슬리는 버건디컬러의 낯선 소파가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직 온전히 변하지 않고 옮겨진 것은 내 방뿐. 창의 크기 때문에 가구의 배치만 조금 달라졌을 뿐, 어릴 때부터 사용한 커튼 하나까지 변함없이 고스란히 옮겨진 내 방송 공간만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사 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동안 아빠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다. 그토록 아빠가 바라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입학식에도 못 올 것 같다는 아빠의 이야기에 서운함이 차올랐지만, 아빠라는 단어로 야기될 불안이 싫어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 못 온대."

"너네 아빠, 그럴 줄 알았어."

"...... 뭐, 별 건가. 입학식. 요즘 다 안 간대. 나도 안 가려고."

"그래, 그럼.'

점점 날 만나러 못 오는 날이 잦아지고, 연락이 뜸해지던 아빠는 얼마 후 해외로 가야 한다고 했다. 사업체를 미국으로 옮겨서 도전 해 볼 예정이라는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며 방학에 만나러 간다 했지만, 얼마지 않아 처음 딴 운전면허로 더듬더듬 찾아간 교외의 아웃렛에서 미국에 있어야 할 아빠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낯선 이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보고 온 날, 아빠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턴가 신발장에서 보이지 않게 된 아빠의 신발들, 폐지로 내버려진 아빠가 아끼던 책들, 어딘가 텅 빈채 떠있는 것 같은 엄마의 눈 빛, 아빠의 진해진 담배 냄새...그 모든 것들의 이유를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묻는 순간 덮쳐올 진실이 무서워서 마주하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 또한 나였는지도. 


여름동안 무성하게 자란 담쟁이덩굴은 가을이 되면 붉은색으로 변하고는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길, 멀리서도 보이는 담벼락의 색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알고,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따스한 온기가 흐르던 날들은 갔다. 가을이 지난 겨울, 나목(裸木)만 남은 담벼락 앞에서 그 집과 마지막 안녕을 나눈 것은 엄마뿐이었다.  우리가 떠나오는 것이 그저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에게도 인사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덜 서글펐을까. 울었을까. 덜 억울했을까. 등뒤로 내려앉는 떠나기 싫은 여름 햇살의 따가움을 느끼며 무력한 생으로 발을 옮긴다.





시집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