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좋은 직장’보다 중요한 것
요즘 저는 한 회사와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개월간 내부 자료를 토대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형태라, 인사팀과 매니저와 미팅을 갖고 일의 방향을 조율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대학 시절 처음 봤던 면접이 떠오르더군요.
지원서를 내고, 합격 통보를 기다리며 설렜던 그때.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제 이름이 붙은 책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순간도 말이죠.
뭐든 새로 배우는 게 즐거웠죠.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기대보다 조금은 쓴 맛이기도 했습니다.그래서 시간이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과연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훌륭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학교 다니는 내내 듣던 말이었지만,
막상 사회인이 되고 나니 그 문장이 제게 던지는 질문이 훨씬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를 키우며 생각합니다.
‘훌륭한 어른’이란 결국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일까.
그걸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몫일 테니까요.
취업, 좁아진 진입로
요즘의 취업 시장을 보면 참 냉정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루스벨트 연구소의 마이클 매도위츠는 “지금의 구직 시장은 끔찍한 교통 체증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사람은 아무도 끼워주지 않는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차와 같다.”
한국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4.6%(2025년 10월 기준)로 전년 대비 하락했습니다. 구직자 2,045명 중 81%가 중소기업에는 아예 지원하지 않았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라면 애초에 지원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는 구직자들이 더 많은 거죠. 그 선택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노동시장의 움직임을 더 굳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 그러나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취업한 신입사원 중
60%가 1~3년 내 회사를 떠난다고 합니다.
기대와 현실의 간극은 왜 이렇게 클까요?
연구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와 알렉스 브라이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젊은 세대는 이전보다 ‘일을 통해 더 큰 행복’을 기대합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다 보니, 자신이 겪는 일상의 지루함에 더 큰 실망을 느낀다는 해석입니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급증한 청소년 자살률과 우울증의 성인 버전이라 해야 할까요? 인터넷 속의 인플루언서의 삶이, 매일 9-5로 일하는 자신의 삶보다 훨씬 행복하고 여유롭게 보이는 상황 속에서 지루함과 견디는 힘이 필요한 ‘회사원’이라는 일상에 대한 행복감은 이제 신기루 같은 그 무언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 실제로 직장이 더 나빠졌다는 가설입니다.
업무시간은 그대로지만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분석되면서 노동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성을 잃은 일터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단순한 자동기계’가 된 것 같은 피로를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신입사원 퇴사의 이유는 비슷하죠.
업무와의 불일치, 낮은 연봉,
조직문화 적응 실패.
버클리대 하스경영대학원의 홀리 슈로스는 “Z세대가 직장 경험보다 학업 경쟁력에 집중하며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부모로서, ‘일의 의미’를 가르친다는 것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일자리의 일부가 이미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좋은 대학 → 좋은 직장’의 공식은 더 이상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번듯한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일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더군요.
지금 막 사회에 나간 세대가 ‘좋은 조직문화’와 ‘적절한 일에 대한 경험’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가능한 인턴쉽이나 클럽활동, 프로젝트를 위주로 여럿이 협업을 해보는 경험 등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함께 일하며 어우러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동시에… 목표로 하고 달려간 회사에 입사하고서도 행복하지 않고, 퇴사를 결심하는 이들을 보며 이런 상황이 어쩌면, 미래에는 더 반복적이고 보편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일자리들이 시시각각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위해 회사들은 더 노력할 테니까요.
기계와 대비해 인간의 효용성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이전 세대들 보다는 부정적인 경험을 자주 마주하겠죠. 그러니, 과거에는 그저 ‘실패’로 여겨졌던 상황을 배워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지지와 회복의 원천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 같죠?
언젠가 우리 아이가
“나는 내 일에서 의미를 찾았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일 안에서 행복하다면,
아이의 삶도 행복에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청년층 고용률 (44.6%)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25년 10월 기준. index.go.kr/1495
중소기업 기피 조사 (81%) – 매거진 한경, “Z세대 구직자 81% ‘중소기업 지원 안 해’”, 2025.10.31. 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510316089b
신입사원 조기 퇴사율 (60%) – 인크루트 조사 인용, 뉴스투데이, 2025.05.14. news2day.co.kr/article/20250514500245
미국 구직 시장 인용 (Michael Madowitz) – The New York Times, “Gen Z and the Unhappiness of Young Workers”, 2024. https://www.nytimes.com/2025/11/05/opinion/gen-z-work.html
홀리 슈로스 (Holly Schroth) 발언 – Business Insider, 2024.
직장 내 노동강도 분석 (Alex Bryson, David Blanchflower) – NBER Working Paper, “Young Worker Despair in the United States”, July 2024. https://www.nber.org/system/files/working_papers/w34071/w3407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