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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양육의 시대,
불안한 부모의 초상

부모의 정신이 무너지는 사회

by 맨모삼천지교

미국 공중보건 책임자 비벡 머시(Dr. Vivek H. Murthy)는 최근 ‘부모의 정신 건강’에 관한 권고문을 발표했습니다. 그간 많은 부모들이 속으로만 인정하던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Parenting today is too hard and stressful.”
오늘날의 양육이란 너무 어렵고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
— Dr. Vivek H. Murthy, U.S. Surgeo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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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문장은 지금 시대 부모들이 마주한 현실을 정확히 정의합니다.


그는 부모의 정신건강 악화를 흡연·에이즈와 같은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하며,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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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 문제 — 외로움, 직장 내 웰빙, 그리고 소셜미디어가 청소년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처럼 —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대가는 매우 큽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사회의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계까지 내몰린 부모들은 단순한 위로 이상의 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지원입니다.”
— Dr. Vivek Murthy, U.S. Surgeon General


보이지 않는 걱정의 시대

양육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일이죠.

물론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일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부모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함께 걱정해야 합니다. 눈앞의 오프라인 세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온라인 세상까지 들여다보아야 할 범주는 배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테크놀로지는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해외에서만 보던 마약 사고나 청소년 범죄가 이제는 한국 뉴스의 헤드라인까지 장식하죠. 거기에 경제적 불안정성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니 현대의 부모인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자녀를 준비시키지 않으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 지금 부모의 일상을 지배하고 이를 지켜본 다음 세대들은 말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겠어."라고 말이죠.


집중양육, 불안의 문화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저서 『불안세대(The Anxious Generation)』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보급 이후 아이들의 자율성과 놀이 시간이 급감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에서는 ‘과보호’를, 온라인에서는 ‘방임’을 하는 기이한 시대가 된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부모의 과보호 현상의 시작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회학자 샤론 헤이(Sharon Hays)는 1996년 저서 『Intensive Mothering』 에서 ‘집중양육(Intensive Mothering)’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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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녀의 재능과 학업, 특기를 세심하게 관리하며 ‘최적의 성장’을 목표로 한 양육 방식을 뜻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매일의 상호작용과 활동을 통해 자녀의 재능과 학업, 미래를 세심하고 체계적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 정의했죠.


그 후 2000년대 들어 이 경향은 점점 강화되었고, 부모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을 자녀에게 쏟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이 압박이 특정 계층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유한 부모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더라도,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모두에게 공통된 고통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이, 행복보다는 고통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 버린 상황, 모두 공감하시나요?


통계로 본 부모의 고립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모 3명 중 1명은 최근 한 달 동안 ‘매우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65%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일반 성인의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 각주 1,2)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부모가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자녀 교육과 활동에 쏟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커진 결과, 부모의 정신적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부모 정신건강 위기를 [사회 전체의 건전성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유급 가족휴가, 공공 돌봄 지원, 정신건강 서비스 확대 등 정책적 대응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한발 더 나아간 사회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심각합니다.


2024년 기준,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만 6세 미만 아동의 절반(47.6%) 이 이미 사교육 기관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비용과 참여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아동 혐오, 양육자를 향한 냉소적인 시선, 그리고 사교육 경쟁이 얽히며 부모들은 압박감 못지않게 고립감을 느낍니다. 공공 돌봄과 부모 정신건강 제도는 여전히 미비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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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조사 이래 최초로 4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10대에서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던 것에 이어, 평균 출산연령 33세의 시대에 40대의 자살률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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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만든 경쟁 구조 때문일까요?

결국 그 불안은 부모의 정신을 소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이 마주한 현실을 좀 더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압박의 구조와 제도의 벽

한국의 교육 경쟁은 아이의 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됩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을 느끼는 분위기죠. 아이의 하루는 ‘놀이’가 아닌 ‘스케줄’로 채워지고, 자유로워야 할 유년기는 비교와 불안의 시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유치원을 가기 전 아이들을 돌보던 기관들의 트렌드가 "놀이식"에서 "학습형"으로 변화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죠.


게다가 제도적인 부분 역시 부모로 겪는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죠. 전보다 나아졌다는 기사가 계속 쏟아지지만, OECD 국가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이 같은 그룹 내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① 공공 돌봄 : 한국의 초등 방과 후·돌봄 서비스 이용률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약 20%)에 머물러 있습니다. 학교별·지자체별 편차가 크고 이용 시간도 제한적이어서, 많은 가정이 여전히 학원과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죠. 즉, 돌봄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질 수요를 감당하기엔 구조적으로 부족한 상태입니다.


② 육아휴직 : 법적으로는 육아휴직이 보장되어 있지만, 남성 사용률이 7.5%에 불과해 OECD 평균(40%)에 크게 못 미칩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용 접근성이 낮아 제도의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죠. 결국 제도는 있으나 부모의 실제 돌봄 부담 완화 효과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③ 부모 정신건강 제도 : 한국의 정신건강 정책에는 청소년·노인 항목은 있으나, ‘부모 정신건강’이 독립 영역으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양육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20~40대 부모가 절반을 넘지만, 공공 상담·치료 이
정책·예산·사회 인식 모두에서 부모 정신건강은 아직 ‘보이지 않는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이번 미국 공중보건 책임자 비벡 H. 머시(Dr. Vivek H. Murthy)의 선언을 보며, 미국이 부모 정신건강을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이 되어 이에 대한 인지와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한국은 법·예산·정책 문서 어디에도부모 정신건강 독립 항목으로 명시되지 않은 부분이 큰 아쉬움이자 위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문화의 뿌리

한국이 미국보다 더 심각한 과잉양육 사회가 된 이유는 단순히 제도 부족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뿌리에는 “좋은 부모라면 끝까지 견뎌야 한다.”라는 문화적 분위기와 신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부모의 정신건강과 돌봄 부담을 공공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부모의 희생이 곧 사랑’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죠. 그 결과, 부모의 고통은 종종 미덕으로 포장되고, 부모의 우울과 무기력은 정책의 사각지대로 밀려납니다. 결국 한국의 과잉양육은 불안과 고립이 구조화된 결과 아닐까요.


저 역시 10대에 막 접어든 아이를 키우며, 이 압박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제 감정은 아이에게도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죠.

어느 날 아이가 제게 “엄마, 나도 엄마 될 수 있을까? 힘들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은 커지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놓치고 있다는 자각은 늦게 찾아왔습니다. 그날 아이의 한마디는, 제가 잊고 있던 사람을 키우는 과정의 의미를 제가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양육의 본뜻

‘양육(養育)’이라는 한자어를 풀어보면, ‘養’은 먹여 기르다, ‘育’은 자라도록 이끌다를 뜻합니다.

즉, 양육은 단순히 아이를 키운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의 생명을 돌보고 인격과 능력이 자라도록 돕는 전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전 과정이 ‘부담’과 ‘스트레스’로만 채워진다면 어떨까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다’는 마음이 줄어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양육 전문가 제닛 랜즈버리(Janet Lansbur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중 양육이 주는 피로감은 결국 부모 자신을 소진시키고, 아이에게도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내면화시킨다.”

그녀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내려놓는 통제’, 즉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할 때, 사실은 아이의 성장 영역을 대신 빼앗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아이를 신뢰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Janet Lansbury, “Kids Don’t Need Intensive Parenting (and Neither Do We!)”-


지속 가능한 부모의 역할이란

매일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사소한 행복들을 느낄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삶을 누리는 부모가 될 수 있을 때 아이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정신건강은 여유가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사치재가 아니지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란 어렵지만, 이 불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계까지 내몰린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함께 짊어질 연대니 까요.








P.S.

표지로 사용한 이미지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21년의 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지낸 어느날 찍어두었던 사진입니다.


저 작품을 사진으로 담았던 이유는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눈에 띄게 어두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의 표정 때문이었어요.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에 비해, 그녀의 얼굴은 공허합니다. 어딘가 걱정이 서려있죠. 초상화로 남는 그림인데 이렇게 화가가 표현한 것을 보면, 아마 실제는 더 우울한 얼굴이었으려나 하는 상상도 해보며 혼자 중얼거렸었습니다.

'저 어머님. 애가 셋이시네...저 시대에도 애 셋 키우기는 힘드셨나. 어머님 눈이 퀭하시네. '

코로나의 와중에 이어지는 온라인 스쿨링과 일과 살림의 틈바구니에서 지쳐가던 시기였어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름의 공감과 위로를 보냈었지요.

IMG_3171.jpg Lady Smith (Charlotte Delaval) and Her Children / by JoshJoshua Reynolds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일은. 이렇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생각했지만, 같은 날. 제 곁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아이패드로 찍은 사진에 낙서를 하고 있던 아이를 보며 웃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부모가 무슨 걱정을 하던,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림속의 아이와 다르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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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모로 사는 일은. 공허하고, 힘들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날들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을 안겨주는 작은 존재들에게 위로받으며 웃게 되는 날들의 연속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 힘들고, 그 옛날의 부모들도 그러했다는 사실을 되새겨보며 그렇게 또, 힘내봅니다.







각주: 참고자료

(1) Le Monde — Is parenting becoming more stressful?

https://www.lemonde.fr/en/m-le-mag/article/2024/10/06/is-parenting-becoming-more-stressful_6728408_117.html


(2) Wall Street Journal — Parenting & Mental Health Warning

https://www.wsj.com/tech/surgeon-general-warning-parenting-mental-health-53f75c63


(3) People — Parenting Stress: A Public Health Concern

https://people.com/surgeon-general-vivek-murthy-parental-stress-serious-concern-8703320

(4) Guardian : Parenting stress is a health issue – US surgeon general’s advisory report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article/2024/aug/28/surgeon-general-parent-health-wellness?


(4) 통계청 — 2024 초중고 사교육비 통계

(5) 재닛 랜스베리의 웹사이트 : https://www.janetlansbury.com/2024/10/kids-dont-need-intensive-parenting-and-neither-do-we/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양육 관련한 다양한 정보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6) 한국 40대 자살률에 대한 기사: https://www.chosun.com/national/2025/09/25/QAIIZ43YX5FTZINQUWNRZ4MF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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