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시 일어난 이유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

by 맨모삼천지교

요즘 2026 밀라노 동계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시차로 인해 실시간 경기를 보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경기 영상과 결과를 매일 아침 보는 것 역시 하루를 시작하는 꽤 즐거운 방식이라 생각하며 즐기는 중인데요, 딱 한 경기는 경기 영상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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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위에 거꾸로 떨어진 한국 선수를 보며 보며, 얼마나 아플까 걱정이 먼저 되었죠. 언젠가, 슬로프에서 정말 심하게 넘어져서 뇌진탕까지 경험한 적이 있었던 터라 화면 속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으로 저릿하게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의 화면에 잡힌 눈물이 그렁한 어린 선수의 얼굴을 보니, 더욱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랐더랬습니다. 마지막 런을 앞두고 울고 있는 10대 선수의 얼굴은, 메달 경쟁을 하는 비장한 선수라기에는 너무 앳된 아이의 얼굴에 가까웠으니까요.


하지만, 두 번의 실패와 부상 뒤에 날아오른 이 선수는, 한국 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것도 심지어, 역대 최연소로 말이죠.

image.png 사진출처: 아시아 투데이

이 선수의 이름은, 이제 전 국민이 알게 된 '최가온' 선수입니다.

이 날, 이 선수의 실패와 도전과. 눈물 끝에 마주한 금메달을 지켜보며...

최선수보다 훨씬 어리지만 같은 10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무엇이 저 아이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을까.'
'처음 넘어졌을 때 나는 화면 너머에서도 이렇게 놀라 가슴이 내려앉는데,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부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날부터 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 소녀의 부모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 아이를 키웠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세계적 선수가 등장할 때 매 번 본, 익숙한 서사가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삶 전체를 운동에 맞춰 살아내며, 코치보다 더 엄격하게 훈련을 관리하는 부모. 흔히 ‘타이거 대디’라고 부르는 모습이죠.

손흥민 선수나, 박세리 선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일 듯합니다.


그런데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찾아 읽으면서 제 예상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최가온 선수의 인터뷰 속의 아버지, 최인영 씨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스포츠 선수의 부모와는 조금 결이 달랐거든요.


그는 경기 전 딸에게 “1등을 노리지 말고 끝까지 완주에 집중하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회 결과보다 아이가 상처를 받아 운동을 그만둘까 더 걱정했다고도 해요. 최가온 선수는 인터뷰에서 “짜증을 내도 다 받아주는 아빠”에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저는,

그는 코치에 가까운 부모가 아니라, 정서를 돌보는 부모에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이 동행했고, 많이 도왔지만, 대신 경기를 하는 부모는 아니었다는 점.

훈련을 관리했지만 결과를 관리하지는 않았다. 성취를 요구하기보다 지속을 지켜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제게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부모 역할의 차이에 대한 연구가 좀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역시 있었습니다!

2019년에 진행된 Knight, C. J. 의 연구, [Parental involvement in youth sport.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에서는, 스포츠 하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합니다.(각주 2)

logistic support (이동, 비용, 장비 제공)

managerial involvement (코치·훈련 관리 및 개입)

instructional behavior (기술 지도·경기 분석)


그리고, 이 연구는 결론에서 매우 명확하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 부모의 기술적·전술적 피드백(instructional behavior)은 선수의 스포츠 즐거움(enjoyment)을 감소시키고, 지속 참여 의도를 낮춘다.."


또 다른 연구(각주 1)에서는, 어린 선수가 스포츠를 그만두게 되는 주요 원인은 재능 부족이 아니라 부모의 압박(parental pressure)이라는 이야기도 보입니다. 가장 큰 부모의 문제적 행동으로 지적된 것은 1) 경기 후 기술 분석 2) 실수 지적 3) 코치 역할 수행이었죠. 한마디로 부모가 경기 평가를 할수록 아이는 스포츠를 즐거움이 아닌 평가 상황으로 인식하고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죠. 최근에 읽은, 다른 스포츠 선수와 양육 관련 칼럼에서는, 이런 부모로 인해 흥미를 잃고 점점 도태되다 스포츠계를 떠나는 아이들을 일컬어 "포도알 같은 아이들이, 건포도가 되어 떠난다."라는 표현을 발견하기도 했었죠. (아래 링크)

https://airmail.news/issues/2026-2-14/beware-the-figure-skating-tiger-mom? utm_campaign=share&utm_source=share


한국에서 운동은 종종 취미나 교육이 아니라 ‘결정’이 되고는 합니다. 운동을 시작하면, 다른 공부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정규 수업을 빠지거나, 수업시간에도 들어와 잠을 자는 것처럼 일반적인 학생들이 하는 '학업'과는 담을 쌓는 모습으로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고는 하죠. 또한, 많은 어린 선수들의 삶에는 지독한 훈련뿐 아니라 부모의 훈육까지 함께 들어가지요. 저는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속 자체가 어려운 사회적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니까요.


한국 엘리트 체육은 오랫동안 [학교 운동부 → 실업팀 → 국가대표]라는 단일 경로로 작동해 왔습니다.

이 경로에서 탈락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경력의 종료가 되는 셈이죠. 그래서 운동은 성장 과정에서 해보는 경험이 아니라, 인생을 건 베팅이 됩니다. 만약 아이가 어떤 가능성을 보이는 상황이라면..... 부모의 개입은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아는 유명 선수들의 부모들이 선수의 유소년 시절 훈련에 코치처럼 개입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설명됩니다. 아이의 경기 결과가 곧 아이의 미래가 되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 부분이죠.


하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 스포츠 협회인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 규정상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기 출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운동은 학업 위에 있지 않고, 학업 안에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죠.

유럽은 더 나아가 선수의 학업이나 직업 병행을 정책으로 운영합니다. 이른바 ‘dual career’ 제도인데요, 이를 통해 운동은 인생을 대체하는 길이 아니라, 인생 속에 들어있는 활동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바로, 올림픽 선수 외에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죠. 이번 알파인 스키 경기를 보던 중에도 중계자의 멘트 속에서 "아, 이선수는 다른 직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종목에 올림픽 선수로 출전했다고 하네요."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선수의 특징으로 중계자의 눈에 이런 부분이 들어온 것은, 한국이라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다른 직업'이 있는 '올림픽 선수'라는 특질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는 굉장히 드문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 컬링팀의 Korey Dropkin 선수는 미네소타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스켈레톤 종목의 Lea Ann Parsely 선수는 뉴욕에서 소방수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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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이야기를 하니 또 떠오르는 인물로 대학 시절까지 체조선수로 활동했던 일론머스크의 측근이었던 직원의 스토리도 생각나네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해 주셔요!)

https://brunch.co.kr/@sunheean0305/242

그럼 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생을 건 스포츠] 보다 [인생 속의 스포츠]를 더 지양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고, 이를 더 권장하는 것일까요?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 조기교육의 핵심은 선수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핵심은 자기 조절능력(self-regulation)과 장기목표 지향성을 만드는 것에 실려있죠. 스포츠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일 훈련하지만, 결과는 몇 달 뒤의 경기에서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위해 현재를 버텨야 하죠. 또한, 매일 또는 매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 처음의 제안은 부모나 코치일 수 있지만 결국 스스로 훈련과 식단, 수면 등을 통제하면서 '자기 통제'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팀 스포츠와 같은 활동 중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능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서열'이라는 것을 체화하게 되죠. 이 모든 과정들은 결국 “노력 → 개선 → 성취”의 인과관계를 신체로 이해하는 것과 같기에 이것이 나중에 학업, 직업, 창업에서 나타나는 ‘그릿(grit)’의 기반이 된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저도 일하면서 만나게 된 글로벌 기업의 임원진들 중에는, 초중시절 스키 선수였던 분들은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특정 종목의 준 선수급 이상의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갈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의 시작이 어린 시절 시작한 운동이었다고 콕 집어 이야기하시는 분들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운동에 거는 대신, 인생을 위해 운동을 이어가는 사람들.

사회적 환경의 차이가, 운동을 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의 차이 또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제게 최가온 선수의 인터뷰를 읽으며 오래 남았던 문장은 '금메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짜증을 내도 다 받아줬다”는 말이었죠.

많이 훈련했고, 많이 이동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결국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기술이나 기록이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어쩌면 아이가 다시 출발선 위에 서게 만든 것은 용기나 정신력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저기 있고 그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감각은 아니었을까요. 최가온 선수의 아버지는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경기를 대신하는 마음으로 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켜봤지만 평가하지는 않았고, 선택의 여지는 자녀에게 남겨둔 채, 준비를 함께했죠. 그런면으로, 위에 살펴본 스포츠를 하는 부모의 역할 중, 해서는 안될 일의 경계를 명확히 알고 선수를 돕는 부모가 아니셨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좋은 부모’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잘 관리하는 부모가 아니라, 실패해도 아이가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공간을 남겨두는 부모 말입니다.


이 글을 쓰며, 여러 나라들의 어린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사회적인 구조와... 이에 대한 연구를 본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꽤 심플했습니다. 우선, 구정 명절을 맞아 스키장으로 떠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남긴 당부였죠.


"재미있게만 타고 와. 자세가 어떻다, 어디를 고쳐야 한다 이런 이야기 말고. 그저 즐겁고 신나게."


좀 못 타는 날도, 잘 타는 날도. 어떤 날이라도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공기와, 그날 부모의 목소리 톤이라는 것을 아니까요. 그래서 어떤 날이라도 같이 나누고 싶은 부모가 되는 것이, 언젠가는 또 아이가 크게 힘든 순간이 와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될 것이라 믿게 되네요.






각주 1) Gould, D., Lauer, L., Rolo, C., Jannes, C., & Pennisi, N. (2008). Understanding the role parents play in tennis success. Journal of Applied Sport Psychology.

각주 2) 관련 논문: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89535450_Influences_on_parental_involvement_in_youth_sport


최가온 선수 아버지 인터뷰

https://www.chosun.com/sports/sports_special/2026/02/14/RURHWBWRIFDYNOZ7EEIYBF5ELM/

https://www.yna.co.kr/view/AKR20260213072600007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21345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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