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희 Aug 02. 2021

할머니에게 바다사진을 선물하는 것

유원지 惟夗地

Song. Okinawa - 92914


 나는 할머니에게 2주마다 한 번씩 고기를 보내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보낸다기보다 내가 주문한 인터넷의 어느 정육 업체가 보내주는 것이겠지.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가 자주 다치고 아프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무거운 김치통을 꺼내다가 손에 힘이 풀려 떨어트리는 바람에 발등이 깨지질 않나 땅에 떨어진 양말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갑자기 어지러워 쓰러지지를 않나 그걸 듣는 나로선 영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자식 된 도리로 뭔가를 해야겠다 싶기도 했기에 찾은 방법이다.


 뉴스에서 노인들은 단백질을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 수록 밥 먹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거나 고기를 소화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또는 경제적인 이유이거나... 등등의 이유들로 끼니를 대충 때우게 되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봤고 나는 ‘이거다 이거 때문에 자주 아프신 거네’ 하고 말았다.


 좋은 핑곗거리고 꽤 가성비가 좋은 효도였다. 내 돈을 들여 먹을 것을 구매해 타인을 먹인다는 것이 나 스스로를 이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또 그 구매하는 것이 고기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들 중 고기는 꽤나 높은 가격의 것이 아닌가. 명절때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 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명절 선물이 그 종류에 따라 훤하게 나타내는 '당신은 나에게 이런 등급의 취급을 받는 사람이에요' 기준에 의하면

1. '난 당신과 스친 적이 있고 앞으로도 스칠 가능성이 있지만 당신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는 김 정도일 거고

2. '여전히 우리가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좋으나 싫으나 당장 헤어질 수는 없으니까 이 정도로 합시다.' 식용유 정도일 거다.

3.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참치나 햄이겠지.

그리고 그 모든 지루한 인간관계의 단계들을 깔고 앉아 제일 위에 있는 것이

4. '나는 당신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기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이 고기를 주기적으로 보낸다.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대단한 책임감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행위임에도 내 시간이나 노력이 극소로 들어간다는 것. 소셜커머스 업체가 엄선해서 메인에 올려놓은 고기를 나는 흘끗 보고 클릭해서 구매한다. 그들이 포장부터 배송까지 모두를 책임져 준다. 심지어 고기를 보낼 날을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핸드폰에 2주 주기로 설정해 놓은 알람이 '띠링' 오늘 고생 좀 하시라고, 오늘 효녀 되시는 날이라고, 알려주니까.


 오늘도 그 모든 지난한 과정들을 마친 뒤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어 할머니 나야"


그러자 '큼큼'하고 가다듬어지는 목소리. 이내 '여보세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활기가 묻어난다.

"아이고 정희야 어쩐 일이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유 항상 그 소리, 일은 무슨 일이 있어, 다름이 아니라 고기 사서 보냈거든 오늘 도착할 거야 고기 안 가면 나한테 알려줘야 돼 업체에 전화해봐야 되니까"


"아유 비싼 고기 좀 이제 그만 보내고 너 먹어 밥은 먹었어? 서울은 비가 많이 온다는데 걱정이 돼서 전화를 할까 하다가 너 일하는데 내가 방해할까 봐..."


"나도 먹고 있어 괜찮아 비 오는데 왜 나를 걱정해 걱정 좀 그만해 그리고... 방해는 무슨 전화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지..."


 내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나를 귀찮게 할까 봐 전화를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상상해버렸다.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평소에는 전화 좀 자주 해야지 싶다가 '그래 전화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치자 그러다가 내가 다시 소홀해지면 전화를 자주 하는 것에 익숙해진 할머니는 더 힘들어 할거 아냐, 내가 꾸준히 전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꾸역꾸역 숨겨놓던 전형적인 불효자식의 생각이 들고야 말면서 '전화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 해라'같은 헛소리나 하고... 나는 효녀인데... 효녀였던 몇 분 전의 나는 너무나 좋았는데 지금은 자기혐오가 생기기 직전의 상황이다. 죄책감이 더 올라오기 전에 전화를 끊어야 한다.


"아 응 할머니 나 이제 그만..." 하던 그때


"그런데 정희야 할머니 목소리 좀 이상하지 않니?"


평소에는 아파도 어디 불편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다급하게 물어봤다.


"왜 어디 안 좋아? 아파? 넘어졌어?"


"아니 그게 아니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가끔 오는 전화 받을 때나 말을 하니까 요즘 부쩍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아 그래서 정희 네가 혹시 할머니 아픈 건 아닐지 걱정할까 해서..."


그렇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불효자다. 2주마다 쓰는 돈 3만 원으로 내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 불효 막심하고 철없는.


 할머니는 발등이 깨졌을 때도, 쓰러지면서 머리를 땅에 부딪혀 기절했을 때도 내가 괜찮냐 물으면

"어 멀쩡해 아픈 곳 하나도 없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프다고. 당신께서 외로워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우리 할머니는 수영을 참 좋아한다. 나이가 어느덧 팔십이 넘고 구십을 바라보지만 수영장에 꾸준히 간다. 기력이 없어도 수영장에 가는 날이면 집에서 쉬는 법이 없다. ‘어차피 아침에 일어나 씻을 거 수영장에 가서 물 냄새 맡고 사람들 보고 거기서 씻고 오면 좋다’ 한다. 그런데 전염병의 극성으로 모두가 고통받는 요즘 수영장을 못 간지 너무 오래되었다. 수영장은 팔십의 그녀에게 유일한 취미이고 놀이터이고 출근이고 퇴근이었는데.


 그 나이 때 어르신들 중 어느 분이 안 그러겠냐마는 할머니는 격동의 한국사를 그대로 통과하며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해방, 6.25. 그런 할머니에게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점이 있는데 할머니의 어머니는 일본인, 아버지는 한국인이셨다.


 그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 왜 일본에 있느냐'며 욕을 들어 먹었고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쪽바리가 죽으려고 왔다'며 또래 애들한테 돌을 맞기 일수였다고 한다. 집안 사정을 대충이라도 아는 어른들로부터 보이는 차별은 겪지 않았지만 또래 아이들의 투명하고 순수한 악다구니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가 없던 할머니는 매일을 바닷가에 나와 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처음엔 철썩철썩 큰 바닷소리가 나를 삼키지는 않을까 무서웠으나 이내 그 소리가 좋아졌다고 한다. 바다가 철썩철썩하면 그 소리가 너무나 커서 '쪽바리' 소리도 '조센징' 소리도 묻혀 들리지가 않았다고, 바다가 철썩철썩하면 '선희야 안녕' 하고 들렸다고, 바다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그녀는 멀찌감치서 바다의 목소리만 듣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다가갔고 만졌고 그 안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물장구를 튀기며 바다와 놀았다. 그녀에게 바다는 친구였다.


 그러던 그녀가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들어버렸다. 차를 삼십 분만 타도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오고 멀미가 난다. 그러니 비행기나 배는 꿈도 못 꾼다.


 어릴 적 온 가족이 함께 제주도 바다를 놀러 갔을 때가 기억이 난다. 여기저기 사진 찍기에 바쁜 아빠, 매점 앞에서 너희들 뭐 먹을래 묻고 음료수 고르느라 정신이 없던 엄마, 거기까지 가서도 티격태격 싸우던 언니와 동생, 대낮부터 잔뜩 취해 뭉개지고 부풀은 혀로 시끄럽게 떠들던 이모와 이모부, 그들 사이에서 혼자 나무로 된 거슬거슬한 울타리를 양손으로 꼭 붙잡고 서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하고 빛내고 있던 할머니. 많고 시끄럽던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할머니는 혼자였다. 혼자만이 바다와 함께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혼자, 바다도 혼자 그렇게 둘은 오롯이 둘이었다.


 할머니도 바다도 똑같이 나이를 먹었지만 늙은 건 할머니뿐이었다. 80년의 세월 동안 가만히 있던 것은 바다였고 떠난 것은 할머니였는데 기다리는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바다를 기다렸다.


 그날의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다음날 그림과 사진을 파는 가게에 갔다. 생각보다 넓고 구석구석까지 놓여있던 물건들에 당황했지만 나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참을 구경한 끝에 꽤 근사한 바다 사진을 발견했다. 잔뜩 신나서 하얀 포말들을 뱉어 내는 바다. 그 옆에 붙어있는 수영장. 그 속을 헤엄치는 사람들을 멀리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 내가 원하던 것들이 퍽 알맞게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바로 사진을 구매해 차에 싣고 할머니에게로 갔다.

 

 가는 길에 전화를 해서 "응 할머니 나 지금 가고 있어, 아냐 뭐 줄게 있어서…한 시간쯤 걸릴 것 같아"하고는 차를 내달렸다.


 할머니의 집에 다다라 주차를 하자 아파트 2층의 베란다 창문이 더러럭하고 열린다. 할머니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차 소리를 어떻게 구별하고는 나인 줄 알았는지. 아니 차 소리가 다 똑같지. 아마 저 시끄러운 창문을 댓 번은 더 열어봤을 것이다.


 나도 그 인사를 받아 손을 흔들고 집에 올라갔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데 이미 2층의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아유..." 하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파트 가득 울렸다.


 집에 들어가 우리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뭐하러 멀리까지 오느냐'며 미안함을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약간의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누군가 '줄게 있어' 말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으며 시간을 끄는 행동은 상대방을 소녀로 만든다. 상대는 기대와 궁금함과 간지러움을 느끼며 마음속에 새싹이 피어오름을 느낀다.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부는 바람에 블라인드가 덜거덕 덜거덕 흔들린다. 한낮의 선명하게 노랗고 뜨거운 햇빛이 그 흔들거리는 블라인드에 잘게 찢겨 거실 바닥을 바스르르 돌아다닌다.


 맑은 날의 바다가 그렇다. 하늘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햇빛 조각들이 와장창 깨지고 떨어져 출렁이는 바다에 닿아 튀기고 섞이고 깨진다.


 오래된 아파트의 현관문에 있는 우유 투입구가 소리 없이 열리더니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소녀가 톡톡 튀며 뛰어들어온다. 그녀는 힘겹게 소파를 오르고 그 위를 뛰어오더니 또 거실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햇빛이 바스러지고 일렁이는 공간의 앞까지 다가간 소녀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양손을 기도하듯 곱게 맞대더니 쭉 뻗어 포물선을 그리며 폴짝, 그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소녀는 거실의 마른 바다를 헤엄친다. 소녀가 뛰어든 그곳에, 할머니의 마음에, 포말이 인다.





[할머니에게 바다사진을 선물하는 것] 끝

유원지 惟夗誌

작가의 이전글 트라제 X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