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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Jul 16. 2021

하루살이

유원지 惟夗誌

Song. Luka - Hania Rani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아빠 하루살이는 자살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빠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변기라는 것 안쪽에 바짝 붙어있다. 모든 것에는 유행이 있는 법이고 자살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변기 자살이 근래 하루살이 자살의 트렌드였다.


이는 너무도 편한 것으로 하루살이들이 변기 자살을 할 때 해야 하는 일은 그냥 앉아있기 뿐이었다. 인간들이 자살을 할 때의 그것들처럼 의자를 발로 찬다거나 힘을 주어 날붙이로 자신을 해하거나 하는 스스로의 의지가 크게 필요치 않았다. 그저 앉아있다 보면 어느샌가 인간이 와서 하루살이에게는 너무나 향기로워 취할 만큼의 냄새를 만들고, 그것에 정신이 없어하다 보면 어느샌가 거대한 폭포가 만들어져 하루살이를 휩쓸어 저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 과정이었다.


 마약에 한껏 취한 뒤 폭포에 빠져 자살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고통 없는 죽음인지, 이거면 됐다. 아빠는 이렇게 생각하고 죽기 전 인생을 정리하는 샘, 과거를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의 과정들을.


 그는 꽤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인간의 술집들이 즐비한 뒷골목의 쓰레기장. 그곳은 하루살이들의 청담동이요 베벌리힐즈였다.


 철없던 청소년기를 지나 아빠도 어느새 결혼 할 나이가 되었다. 재벌 2세들의 결혼은 대부분 형편없는 결말을 만들어내지만 아빠는 운이 좋았다. 어릴 적 소꿉친구였던 엄마와 네시간 반의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중산층 집안의 현명한 암컷으로, 삶의 풍파라고는 종이를 넘기다 다리를 베인 정도가 다 였던 아빠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아주고 가르치고 길러냈다.


 둘은 본인들을 똑 닮은 토끼 같은 딸까지 낳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거미줄에도 뛰어들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 하루살이의 삶 또한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가. 아빠의 집안은 아빠의 아빠의 죽음으로 급격하게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지금의 안정적인 삶 정도면 더 이상의 부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부인과 딸이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의 바닥은 알 수 없고 신은 언제나 놀라울 정도로 피조물들에게 무관심하다.

惟夗地

 어느 날 딸이 날 수가 없다고 했다. 걷기도 어렵다고 했다


 세상을 다 잃을 듯한 두려움으로 아빠와 엄마는 딸을 병원에 데려갔다. 딸은 날개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대로면 남은 수명은 삼십분도 길게 쳐준 거라는 의사의 기계 같은 판정에 아빠는 그 자리에서 의사의 날개를 잡아 뜯고 온 마디를 끊어내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었다. 그러나 충동과는 반대로 여섯 무릎을 꿇었다.


"제발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살려만 주십시오 제 날개를 뽑아다 주어도 좋습니다 제발 어떤 방법이라도, 하나라도 있다면.."


 일로서 죽음을 다루는 자의 권태도 부모의 진실된 읍소에는 마음이 동하는가. 의사의 단호한 표정이 조금 무너져 머뭇거리다 이내 조용히 얘기를 꺼냈다.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있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방법입니다. 현재 날개암 관련해서 개발 중인 신약이 있기는 한데 개발단계라 피실험자로 해당 기관에게 뽑히지 않으면 받아 볼 방법은 없습니다. 저도 아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더는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연명치료를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저희 병원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아빠는 도저히 딸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 잘 얘기했는지 뭐라고 하셨는지 묻는 엄마에게 답 할 말이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고 날 수 없었고 걸을 수 없었고 숨 쉴 수 없었다.


 딸과 엄마를 집으로 먼저 보냈다. 아빠는 병원 뒤 계단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 꾸역꾸역 막아내고 있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아빠는 지금의 변기 자살까지 온 것이다. 비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너무나 어려운 방법으로, 너무나 쉽게.


 딸아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만 눈을 감고 있던 아빠에게 아주 작게 날갯짓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아빠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남루한 행색을 한 8시간 중반 나이대의 청년이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아저씨 병원에서부터 따라왔어요, 저도 그 병원에 입원해있었거든요. 그... 뭐... 다름이 아니라 엿듣고 싶어서 엿들은 것은 아닌데 아저씨 사정 다 들었습니다."


아빠는 쏘아붙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하루살이 마지막 구경이라도 하려고 온 거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유 아저씨가 까칠하시다 그게 아니고요." 하더니 남자는


"제가 알거든요 그거 실험받을 방법." 했다.


아빠는 생각도 전에 먼저 몸이 반응한 듯 빠르게 붕 날아올라 남자에게 다가섰다


"뭐? 실험? 그 시약 말이야? 정말이야? 장난치는 거면 가만 안 둔다 한 놈 죽이고 죽어도 내 하루는 아직 충분하거든? 제발 제발 알려줘 청년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응? 뭐가 필요한데?"


"아니 우선 이 손들 놓고 얘기하시고요"


"뭐 딱한 사정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마는 제가 이쪽 브로커가 직업이라.. 뭔갈 요구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이게 가격이 조금 있기는 해서..."


"그래도 아저씨는 운좋으신겁니다 억만금을 줘도 저랑 못 만나는 벌레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게 무슨 충연인지... 제 여자친구가 간호사인데 하필 딱! 아저씨 딸을 맡게 되고 사연을 듣고서 남자친구인 저한테 얘기해준 거니까요."


정신 나간 놈이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이렇게 사연이 바뀌는 걸 보면 정신 나간 놈 아니면 멍청한 초보 사기꾼이야. 그런데 만약 아니라면? 말을 바꾼 거야 무슨 이유에서든 내 알 바 아니고 실제로 아주 적은 확률이라도, 수요일에 태어난 하루살이가 금요일에도 살아있을 수 있는 그런 확률로라도 이 남자의 직업이 사실이라면?


아빠는 남자를 다시 붙잡았다.


"그래서 얼만지나 알려줘 그리고 그게 얼마든 떼먹기만 해봐, 사기이기만 해 봐, 내 딸 골려먹을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 진짜 가만 안 둘 거니까."


남자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유 그럼요 방금 자살까지 하려던 벌레가 뭘 못하겠습니까.저 겁 많아요 그런 거 못합니다"


"아저씨, 물론 지금 제가 의심스러우신 것 압니다. 다들 그러시니까요 그런데 그냥 믿어주시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서로가 서로의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자고요 예?"


"그래서 얼마냐고."


"삼백만원이요"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그런 돈이 없어"


 아빠는 힘없이 몸 속 숨의 전부가 한 줌이었던 양 짧고 약한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곤란하네요.. 그럼 거래는 어렵겠어요"


 아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양의 절망이지만 희망에 담갔다 빼어 젖은 절망의 괴로움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아빠는 지금 너무나 죽고 싶었다. 변기 자살 따위의 평화로운 방법이 아니라 머리를 돌에 박아대면서 스스로, 고통스럽게, 그 고통에 못 이겨 울부짖고 가슴을 긁어 파내다 그렇게 죽고 싶었다.


"야...참... 근데 정말 아저씨는 운 좋으신 겁니다."


아빠는 떨궜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빛이 스며들어 시야를 적셔왔다.


"이거 돈을 벌 방법까지 알려드려야겠네요, 도대체 어느 브로커가 이렇게까지 해준답니까? 없어요 저 말고는 없습니다."


"선생님 그 방법이 뭡니까 뭐든 할 테니까 알려만 주세요"


그 갑작스러운 존대가,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존경을 의미한다는 것을 청년은 알았다


"푸흐흐... 아, 죄송합니다."


"별건 아니고 음식을 구해오는 거예요 인간 음식이요."


"그런데 보통 음식 이어선 안되고 술을 구해와야 합니다 술이 뭔지 들어는 보셨나?"


“저도 그게 뭔지는 압니다. “ 청년의 이어지는 질문들에 아빠는 말했다.


“우리 같은 하루살이들에게 술 한 방울이면 평생을 취해 있다가 취한 채로 죽음까지, 편하고, 재미있게 갈 수 있죠 그거 한 방울에 억만금을 내놓는 사람이 널렸어.”

“세세한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구해만 오시면 유통부터 판매까지 제가 다 라인이 있어서 알아서 해결해드릴 테니까.”



“걱정했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화내기는커녕 엄마의 부드러운 말투에 집에 돌아온 아빠는 무너지고 말았다. 엄마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 모든 것을 얘기해주었다.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났다, 얼마 남지 않은 딸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할망정 아빠가 늦은 것도, 혼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 이상한 거래를 하고 온 것도, 그 어떤 것들도 아닌 스스로 죽으려 했다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났다. 아주 작은 사건의 나비효과가 아니었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를,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을 뻔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는 강하기에 이빨 한번 악 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아빠를 위로한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 힘든 상태라는 걸 알기에,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는 일단 자자, 늦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모든 고민과 결정은 다음 시간에 해도 늦지 않는다.

했다.


 둘은 누웠다. 세상이 잔다, 이웃들도, 파리도, 들개도, 고양이도, 하늘도. 모두가 자는데 둘만 잠들지 못한다


 오분이나 지났을까 아빠는 조용히 일어나 엄마에게 입 맞추고는 집을 나갈 채비를 한다.


 엄마는 깨어있었다. 함께 입 맞추고 끌어안고 사랑한다 꼭 돌아오라 죽지 마라 하고 싶었으나 항상 최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엄마는 조용히 자는 척하며 눈물만 흘릴 뿐이다.


 아빠는 딸에게 입을 맞추고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의 하루를 위해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고 그렇게 하러 간다 잘 자라 아가’ 생각한다.


딸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아빠 어디 가?”


“아빠 일하러 갔다 올 거야 더 자, 아빠 돌아오면 오늘은 딸 좋아하는 거 잔뜩 먹자”


그러곤 집을 나와 길을 떠난다. 나는 산다, 살아온다, 그래야 살린다, 살릴 것이다.







"와아 날씨가 너무 좋은데? 한강 오길 잘했다 자기야, 배는 안고파?"


"그러게 슬슬 고픈데.."


"그럼 저녁을 먹으러 갈걸 맥주랑 과자는 괜히 샀다"


"괜찮아 지금은 이걸로 배 좀 채우고 밤에 맛있는 거 먹지 뭐 근데 여기 강가라 그런가 왜 이리 벌레가 꼬여 아유"











[하루살이] 끝

유원지 惟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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