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ho Oct 24. 2019

여행을 가면 아침에 눈이 떠진다

함께 여행을 가면 늦잠 많은 동거인을 두고 동네를 둘러본다. 중심가에 호텔을 잡지 않고 구석지에서 며칠을 보내면 일상을 본다. 출근하는 사람, 가게를 여는 사람, 아이를 등교시키는 이와 이미 출근 한 사람들을 평범한 거리에서 몇 번이고 지나친다.

깜장색 정장 사이에서 하늘색 블라우스나 카키색 자켓을 발견하면 눈이 돌아간다. 붉은색에는 일단 놀란다.

갓 문을 연 주인에게 안 되는 일어로 질문을 하고, 안 되는 영어로 답변을 받는다. 구글맵을 열어 그가 추천하는 가게에 별을 달았다.

의자가 없는 스탠딩-커피-바에 대해서는 지면으로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또 달랐다. 생각보다 배에 힘을 줘야 했고, 멍하니 핸드폰을 보기도 어려웠다. 한참 책을 읽어도 고작 10분이 지나있었다. 하나 둘 손님이 들어왔지만, 몇 번의 사진 소리를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났다. 모르지만 좋은 노래가 반, 모르면서 과한 노래가 또 반 정도 들렸다. 아는 노래는 열에 한 번씩 들려왔다. 구글맵을 열고 "오고 싶은 곳"으로 표시한 스테레오 커피를 "별표"로 교체했다.

아직까지도 영패션 매장을 돌아다니는 내가 층 위에 위치한 전문 매장의 모양과 가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어떻게 저런 브랜드가 있지? 하고 놀라워하니, 자신이 보여지고 싶은 모습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며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의미를 몰랐던 것이었다. 나를 해치지 않는 선 정도만 가늠하며 옷을 걸치는 내가 반성을 했다. 반성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또 없지만, 은연중의 무시를 미안해했다. 집의 얼굴들을 지나치며 문득 그의 말을 떠올렸다.

신호에 걸리자 자전거를 멈추고 책을 읽는 사람과 신호가 바뀌자 기어를 잡는 사람. 등교하는 어린이와 거대한 감자를 만났다.

체류 자격을 가지고 몇 년 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살아도 모르는 것이 그 나라이고 그 도시여도, 가이드에 실리지 않을 골목을 걸으며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말을 걸게 된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은 없는 건가요. 그 누구도 답답한 상황에서 빵 소리를 내지 않네요. 삼십만 원씩 하는 가방을 모든 아이들이 메고 있나요. 자전거 의자가 다들 낮은 것 같은데요. 영수증을 손으로 쓰면 왜 추억이 될까요. 고맙습니다 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건 우리와 같네요. 타베로그 지도가 불편하지 않나요. 쟈란은요. 지난번 방문보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여요. 동거인 없이도 가게의 주인들과 말할 수 있어 좋네요.

이제쯤이면 일어났을까 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씻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티비가 틀어져있지도 않았다. 창문을 열고 해를 들였더니, 사부작 거리는 이불 소리 너머로 갈라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며 서른 번쯤 여권에 도장을 찍은 도시에 휴가를 내서 찾아온다. 매년 하는 의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하게 될까.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especiallywhen/
홈페이지: www.related-works.com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에서 먹고 먹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