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는 날.

by 김태연



그런 날이 있다. 노트북을 펼쳤다가 쓸 말이 없어서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는 날. 어제도 그저께도 그런 날이었다. 뭔가를 쓰고 싶지만 쓰기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뭔가를 쓰고 싶은 날이었다. 결국 오늘도 그런 날이 될 것 같아 일단 타자를 두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잠만 잤다. 약한 감기에 걸린탓인지 몸이 솜 먹은 물처럼 축축 늘어졌다. 감기약을 먹으면 졸려왔고, 덕분에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잠의 연속이었다. 저녁은 그저께부터 즐겨보던 드라마 방송을 시청하고 누운 남편 옆에 가서 가만히 남편을 끌어안고 누웠다. 요즘 들어 우리 부부는 따로 잔 지 1년이 넘었다. 그냥 거의 육아에 찌들고, 일에 찌들어서 그런지 거실에서 나는 소파, 남편은 바닥에서 그냥 매일 뻗고 말았는데 남편이 이제는 침대에서 자자며 손을 내밀어왔다.


처음엔 거부했다.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같이 자자고? 그런데 또 이틀 자다 보니 온기가 따뜻하고 잠은 잘 온다. 이래서 침대를 쓰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침대는 거의 마른빨래를 올려놓는 용도로 썼으니 그곳에서 잘 수 없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많다.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집을 모시고 사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 집의 구석구석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살림은 10년 차가 되어가는데도, 늘지 않는다. 그건 마치 뭔가를 거부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살림 자체를 거부하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10년 동안이나 말이다. 이젠 적응될 때도 되었는데도, 여전히 적응 중이다. 쉽지 않은 게 티도 안나는 살림이란 말이지.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근부터 그렇게 생각 중이다. 뭐 못할 수도 있지. 다른 뭔가 찾지 못한 부분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일지도 몰라. 하면서 말이다.




토요일에는 쇼핑몰을 가는 길에 아이의 게임에 대해 신랑과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했다. 너 너무 많이 한다며 좀 줄여야 한다는 잔소리에 내가 괜히 발끈해서는 할거 다 하고 하는 거라고,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할 거라며 신랑말에 반박한 내가, 지금에 와서야 왜 그랬나 싶은 거다. 그냥 잔소리하게 내버려 둘걸, 그거 듣기 싫다고 발끈해서는.. 아빠니까 당연히 그런 말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게임=공부. 이런 공식으로 가는 패턴이 싫었다고 해야 할까. 공부는 당연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과는 좀 다른 남편의 입장이다. 존중해줬어야 했는데, 괜히 반박했다가 남편은 니 맘대로 해라. 라며 포기선언을 했다. 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의 말을 존중해 줬어야 아이도 그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텐데 말이다. 사람은 왜 이렇게 말을 꺼내고 나서 후회하는가. 아아. 후회된다. 그러지 말걸. 하면서.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의 내 아들도 다섯 살이 처음일 거고. 마흔이 다가오는 내 나이도 지금이 처음인지라 늘 어렵다. 엄마인 입장도 처음이라 어려운 거고, 아들도 내 아들이 처음이라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뭐든지 다 알거란건 착각인 것 같다. 본인이 경험한 것만을 알 수 있는 건,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테니. 예를 들자면.. 지옥이 진짜 있나? 뭐 이런 거 말이다.




세 살의 엄마와, 다섯 살의 엄마는 다르고, 초등학생의 엄마는 또 달라진다. 참 희한해. 이렇게 달라지는 게 맞는 거겠지? 아이가 한 살씩 먹어가는걸 엄마도 처음경험하는 것이니 점점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려면 엄마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존중하는 것이란 그런 것일까. 뭐 그런 부류의 생각들을 요즘은 하고 있다. 이런 고민도 처음인지라 참 들쑥날쑥하다. 어떤 날은 존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날은 존중이고 뭐고 넌 좀 혼나야겠다 이러면서 화를 낸다. 사람은 참.. 쉽게 바뀌지 않으면서도 바뀌려고 노력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렇게 반복을 하면서 우리는 어제보단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걸까. 좀 더 나은인간이란 뭘까. 덜 화내는 사람? 더 참아내는 자세? 뭐 어쨌든 어제보다야 좀 더 참을 수 있고, 덜 화낸다면야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 아닐까(나는 정말로 화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처음인 것 같다. 처음이니까 좀 서투르고 몰라도 괜찮겠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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