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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Feb 09. 2023

취향의 발견







그러니까, 이건 정말 사소한 습관 같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 거였다. 아직도 이게 확실한건진 모르겠지만, 오늘 발견된 취향은 나는 어느새부턴가 검은색 상의를 꽤 좋아한다는 것.



매일같이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던 옷가게에 가서 형형색색의 봄옷을 보자마자 뛰쳐나온 건..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때문일까. 어? 왜 여기 옷이 예쁘지 않지. 정말 5분도 안되어서 날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다음에 오겠단 말과 함께 서둘러 가게를 나오기 바빴던 내 발걸음은 차를 향했다. 봄이라면 모름지기 머리도 하고 싶고(물론 최근에 한 연예인의 사진을 가져가서 머리를 하고 왔지만 망했다.. 미용사가 내게 큰 시련을 준 게 틀림없었다) 옷도 사고 싶고.. 아무래도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다. 최근에 소비를 줄여야 하는 터라 굉장히 힘들었고, 아이들 방학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다.


봄이라면 당연히 색색깔의 옷. 특히 밝은 옷을 입는 게 좀 더 산뜻하고 화사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늘 봄이 되면 밝은 색의 컬러를 사기 시작하곤 했는데, 오늘은 유독 그게 안 먹혔나.. 이상하리만치 색색깔의 옷들이 눈이 아팠다. 그나마 눈에 들어온 건 청자켓정도랄까.. 참새방앗간 같은 옷가게를 나와서 아이 문제집을 사러 다른 상가 쪽으로 차를 돌렸다. 


문제집을 사고, SNS로 봐두었던 청자켓을 실제로 그 가게에 가서 구경을 하고 망설임 없이 샀다. 요즘엔 짧게 나오는 게 유행인 건지 모든 상의들이 짧게 나오는 편인데, 나는 허리 밑으로 내려오는 재킷을 좋아하는 편이라 찾는 것도 힘들었다. 마침 마음에 들었던 색이고 뻣뻣하지 않아서 청자켓을 사고 나와서는, 가끔 가던 두 번째 단골가게를 갔는데 이게 왠 걸. 이번엔 이 사장님 취향이 나랑 맞는 것이다. 뭐 하나 빠짐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옷들이 없었다. 게다가 검은색은 어울리지도 않고 잘 입지도 않는데 왜인지 자꾸 눈이 갔다.


결국 검은색 재킷, 검은색 블라우스, 심지어 검은색 반팔티까지 사고서야 나와선.. 가게 사장님이 사주는 커피까지 얻어서는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입어보니 역시 마음에 든다. 아토피가 있는 나는 까끌거리는 소재인 니트들은 맨날 사두고선 입지도 못하고 처박아두기 일쑤였는데, 오늘 산 옷들은 전혀 그런 감이 없는(일단 니트가 아니기에) 옷들이라 그런지 입어도 마음에 들었다. 묘하게 취향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예뻐야 하고, 조금 짧아도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었다면 지금은 내가 손이 자주 갈 것 같은 옷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어? 왜 갑자기 검정이지? 그냥 꽂힌 건가? 아마도 그럴 수도 있다. 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꽂힌 색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조금 바뀐 거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좀 기뻤다.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에. 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쩌면 그 사장님이 사준 커피에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정말 옷을 사고 싶었던 그 순간 그 장소에 그 옷이 걸려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이유야 어쨌든.


나쁘지는 않다. 엄마는 하루 종일 밖에 있을 거냐는 큰아이의 전화너머 잔소리에도 꽤 기분이 괜찮았던걸 보면. 새로운 기분으로 올해를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블랙이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내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으니 구매했을 것이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새로운 시각을 찾는 눈이 게을러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검은색. 꽤 괜찮네. 흐흐.

나는 웃으며 오늘 산 옷을 생각해 본다.

신랑이 알면 잔소리할게 뻔하지만, 돈을 주고 취향을 샀다.라고 생각해 보니 썩 별로인 소비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꽤나 좋은 소비였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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