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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Apr 19. 2023

매일을 살아가는 힘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책을 펼쳤다. 활자가 눈에 들어오니 정신이 번뜩, 드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왕 시작한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다. 새벽은 그렇게 뜻하지 않은 집중력을 준다. 그리고 내 옆에서 깬 나의 동지 같은 첫째는 패드를 들고 와 새벽부터 게임을 한다. 우리, 동지구나. 너는 게임을 하고 나는 책을 읽으며 서로의 아침잠을 스스로 깨운다. 나는 그만하라는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내 아이의 루틴이 맘에 들진 않지만 나름대로 정해져 있는 자신만의 하루 계획이 있는 걸 아니까. 새벽에 게임을 하든, 종이접기를 하든, 이웃에 피해만 안주는 선에서는 뭐든 허락이다. 어쩌면 그러라고 새벽시간이 있는 걸 지도 모르겠다.



몇 달 만에 눈에 밟힌 책인 걸까. 그동안은 책을 멀리했었다. 대신 술을 가까이했다. 육아를 보다가도 마셨고, 집안일을 하다가도 마셨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사람 마냥 매일 맥주 한 캔 씩을 땄다. 그건, 꼭 심리적 보상과도 같은 느낌이라 도저히 피해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보내면 보냈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하면 힘들다는 이유로. 육아를 하면 맨 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어서. 온갖 갖가지 핑계를 다 댔다. 삶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는 거라고.라고 생각하며.



요즘 최대의 난제는 전셋집 구하기다. 집주인이 우리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매매가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눈치이다. 나는 새로 들어올 집주인이 세를 주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움직이려면 돈이 더 깨지니, 이참에 세입자를 끼고 매매를 하려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바라는 것이다. 9월이 만기인데, 과연 그때까지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인생살이가 그렇게 원하는 대로 착착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저 평범하고 더없는 소망일 뿐이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고민은 첫째의 공부다. 공부는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고민이 된다. 아직 공부에 관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첫째는 벌써 3학년이 되었다. 영어도, 과학도, 사회도, 수학도, 국어도 혼자서 문제집 푸는 걸로 해결한다. 이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내가 봐주는 이 문제집들은 언제까지 유효기간으로 될 것인가. 너무 뜬금없는 고민인데 진지하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 수학이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고, 안 하던 영어도 과목에 들어간다. 과학 사회는 말할게 어디 있을까. 영어랑 매일 반복 반복이다. 이쯤 되면 우리 애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봐주고 있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정체성의 혼란의 시기가 온다. 아, 이래서 학원에 보내는구나. 요즘 깨닫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나는 학원을 안 보내기 때문에 학원 보내는 엄마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도 학원을 안 보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달까. 나는 종종 엄마들 옆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말하나 꺼내지 못하고 배회한다. 섞이고 싶지만 할 말이 없는 나와, 나에게서 얻을 수 없는 정보들 덕분에 나와 친해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 알지만, 역시나 인간관계란 어렵다.



매일 아침, 나와 아이는 다짐한다.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우리는 매일매일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아들이 받아오는 시험지에 일희일비하는 걸 보면, 난 아직도 멀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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