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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02. 2023

고독한 낮의 에세이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고독하다는 말이다. 즉, 내가 고독하다는 뜻.


그건 꼭 맥주 4캔째를 마시고 비워서야 나타났다. 아, 뭔가 서글퍼져.라고 말하고 싶은 입을 꾹 닫으며 이제 막 맥주 5캔째를 손에 쥐고 열고 있었다. 


엄마. 나 비밀번호를 모르겠어. 모르는 전화번호로 온 아들의 목소리는 지쳐 보였고 미안함에 얼른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제대로 잘 들어갔냐고 확인하는 나의 목소리는 다급해 보이기도 했으면서, 엄청나게 속이 느려터진 엄마 같은 음성이었다. 


엄마들과의 커피 모임에서 얼결에 맥주를 마시게 된 나의 상황은 재밌으면서도 꼭 홀로 남겨진 상황 같이 외로웠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나는 그렇게 늘 믿으며 사람을 만난다. 사람들 속에서 껴있어도 우리가 함께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겠지. 왠지 그렇게 믿으면 동질감이 느껴진다. 어쩐지 나만 외롭지는 않은 느낌. 그래서 좀 덜 외로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큰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면서 내가 언제까지 너의 문제들을 봐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중학생 때까지.라고 말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 어버이날을 위해 만들어온 편지도 책가방 속에 있었다. 

늘 내가 가방을 한 번씩 돌아봐야 쥐어지는 편지들. 알림장들. 부러진 연필, 없어진 지우개. 

오늘 읽었을지도 모르는 동화책. 매일매일 봐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1학년이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부러진 연필심을 늘 깎아주고, 아침마다 학교에서 읽을지 안 읽을지도 모를 책을 골라가라고 하고, 지루해서 뜯긴 건지 재미로 뜯은 건지 모를 지우개를 새 걸로 갈아주는 건 나의 몫이었다.


그건 이제 알아서 하라고 할 법도 한데, 아직은. 아직은 해주고 싶어서 해주고 있다. 언젠가는, 이러한 일들도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면 놓아줘야 하는데도 놓아줄 수 없는 줄을 쥐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떠나가는 줄의 허망한 감촉을 손으로 느끼게 되면 아마, 조금은 슬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사실은 이건 모두 술 때문이야. 고독한 한 아줌마는 이렇게 대낮에 술을 먹으며 별의별 생각들을 다 하곤 하지. 나는 어쩌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웃고 싶기도 하다. 나도 모르겠는 이 감정은 누구도 모르겠지. 


하지만 확실한 건 좀 쓸쓸한 기분은 든다는 것. 그건 꼭 자식을 키워야만 느끼는 감정도 아니고, 뭔가를 놓지 못해서 느끼는 감정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인간이란, 본래 가끔은 쓸쓸하기도 한 거고 술을 먹어서 

그 감정이 조금 더 한 두 배정도 올라온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뭐, 그렇지만 나쁘지는 않다. 다 그런 게 인생이니까.


약을 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그런데 이 정도로 살만한 거면 계속 먹어도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오만감같이 보이기도 하고, 자신감처럼 보이기도 하는 나의 우울이 이 낮의 고독을 

울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야, 뭐든 다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때론, 우리는 모두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5월의 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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