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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05. 2023

우리는 많은 걸 가지고 있지.



어린이날 선물을 직접 고르라는 말과 함께 우리 가족은 모두 마트 오픈시간에 맞춰 갔다. 큰아이는 게임팩 두 개를 골랐고, 작은아이는 장난감을 골랐다. 그리고 뜬금없이 커피머신 하나 살래?라는 남편의 물음에 놀란 나도 있었다. 요즘 들어 소비를 줄이자는 말만 몇 년 동안 해왔던 남편인데, 커피머신을 사주겠다니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말이던지. 선뜻 좋다고 말하지 못한 나는 대신 당을 채울 목적이었는지 콜라 12개 묶음짜리를 두팩이나 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말 꽤 감동적이게 들린 것 같다 말하니 남편이 어이없어했다. 당신, 커피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하는 무심한 말투가 사실은 엄청 멋있는 드라마 대사 같기도 했다. 



물론 캡슐 머신이 우리 집에 있기도 하고, 또 사야 한다면 귀찮음의 절정인 내가 원두를 직접 사서 먹을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또 캡슐머신을 살게 분명하지만 그냥 남편의 말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가지지 않고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때로는 사람의 한마디 말이 꽤 충만한 만족감에 비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말 한마디에 감동을 쫌 먹은 상태라 그런지 기분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우리는 마트에서 파는 계란빵을 각각 한 개씩 먹으며 저마다 풍성한 마음을 안고 나왔다. 아, 물론 우리 남편은 지갑이 대신 얇아졌으므로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남편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풍요로워졌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선물에 만족스러운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가지려고 하지만 정작 마음이 풍족해지는 상황이 오는 건 무심하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을 알았을 때 아닐까. 라는걸 말이다. 나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고, 소비하려는 욕구가 많으며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오늘 남편의 말 한마디가, 그게 뭐라고 없어도 괜찮아.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건지.. 말이라는 게, 마음이라는 걸 보여준다는 게 생각보다 되게 큰 일이구나 이거.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사준다는 걸 마다하다니. 내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물론 그러고 나서 가지고 싶은 가방이 있다고 넌지시 꺼낸 말에 남편이 흔쾌히 오케이 해줘서 더 놀랐지만..


어린이를 위한 오늘 같은 날에, 미안하지만 어린이들인 우리 아들들보다 내 기분이 더 좋았던 날이었다.

우리 남편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런 말을 건넨 걸까.

뭐, 아무렴 좋지. 그게 어떤 마음이었든 간에 나를 생각해 준 말은 분명히 맞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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