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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11. 2023

세차를 맡겼다

이건 물론 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오전부터 세차를 맡겼다. 다행히 오늘은 지방 출장이라 남편이 다른 사람차를 얻어 타고 간 덕분에 차를 오랜만에 사용할 수 있다. 보통은 주로 차를 두고 가면 장을 보러 가는 편이지만, 요즘에는 반찬을 딱히 안 하기 때문에 장을 볼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새벽이면 배송되는 편리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낑낑 장을 보면서 찬거리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남편은 절대 맡기지 않을 손세차를 종종 나는 맡기곤 한다. 외부는 그렇다 쳐도 내부는 세차를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맡기는 걸 지도 모른다. 나는 오전 일찍 차를 맡기고 카페에 와서 콜드브루 한잔을 시켰다. 그것도 큰 잔으로. 그저께 의사에게 바꿔왔던 약에 수면제가 한 가지 더 포함돼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도 정신이 맑지 못하고 약간 몽롱한 상태이다. 막 엄청 졸린 건 아니지만, 역시 어중간하게 깨는 건 느낌이 별로다. 좀 상큼한 걸 먹었어야 했나. 반도 채 안 남겨진 콜드브루를 보며 생각한다. 벌컥벌컥 맘만 먹으면 세 번 만에 다 마실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감각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세차를 다 하면 오늘은 그때 못 받아온 다이어트 약을 받아와야겠다. 얼른 먹어야 살을 빼든가 말든가 하지. 숙제를 계속 남겨놓는 느낌이군. 어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큰아이에게 그렇게 공부할 마음이면 가서 잠이나 자라고 윽박을 질렀다. 사랑과 잔소리는 역시 별개의 일이다.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아이라는 건 물론 알고 있지만, 내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이 피곤할 때는 아이의 투정이나 짜증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평소라면 살살 달랬을 나도 어제는 될 대로 돼라. 그런 식이 었던 것 같다. 큰아이는 훌쩍거리다가 결국 방에 들어가서 잠이 들고야 말았다. 나는, 그런 큰아이를 보고 미안했지만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귀한 내 아이라고 해도 내가 피곤하면 좋은 말투와 상냥한 마음으로 대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이래서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큰아이와 실랑이를 했어도 크게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엄마와 자식이 어떻게 매일 좋을 수만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인데 당연히 갈등도 생기고 불화도 있는 법이지. 내가 피곤한 날에는 유난히 예민하게 굴수도 있는 거고 아이가 예민한 날에는 아이가 예민하게 굴 수도 있는 법이다. 사람과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따가 아이가 끝나면 학원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독서심리 학원을 다니는 내 아이는 독서를 하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발표하거나, 자신이 경험하고 어땠는지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흔히 말하는 독서 토론 같은 건 아니고 좀 더 심리 쪽에 치우쳐 있는 편이다.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터는 아니었다. 그냥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2년이나 되어가고 있다. 큰아이는 다니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정도는 된 것 같다. 많이 늘었다. 무언가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자는 주의인지라 딱히 아이가 싫다고 할 때까지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게 좀 번거로운 건 있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그만두라고 넌지시 물어볼 정도였다. 차량지원을 하지 않는 학원인지라 스스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그러기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다. 주로 내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려고 하지만 그게 무리하게 되지 않을 때는 아예 학원을 빠지는 쪽으로 스케줄을 조정한다. 나는 생각보다 성실한 엄마는 아니라서 아이가 학원을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예민하게 굴지 않는다. 그래봤자 축구 하나랑 독서심리 그거 한번 다니는 터라 그럴지도 모른다. 공부에 관한 학원은 다니지 않아서 더욱더 그럴 수도 있다. 아마 영어나 수학이었으면 달랐으려나. 뭐, 비슷할 것 같다. 천성이 어디 가겠나 싶은 거다. 나도 예전에 학원에 빠지고 싶은 마음정도는 한 번씩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다. 어릴 때의 나도 그랬는데, 어린 나의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인 거다. 학교 안 가는 날은 신나고, 학교 가는 날은 좀 귀찮고,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싶은 거다.




다행히 상담을 했을 때는 아이는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공부는 못해도 되니 학교 가는 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니었던가. 친구들과 밥 먹고 쉬는 시간에 수다 떠는 그 잠깐의 즐거움으로 지루한 수업시간을 참고 견디는 거 아니었나.. 나는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큰아이는 한 번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 정도면 다행인 거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래서 이사도 함부로 타 지역으로 갈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있다. 지금 학교에 잘 적응해서 잘 다니고 있는 애의 환경을 굳이 바꿔주고 싶지 않은 터였다.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를 굳이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이런 식으로 터를 잡는 건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터 잡는 게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군. 그것도 아주 간단한 이유로 말이다. 원래 부모 마음이란 다 그런 건가 싶다.




배도 안 고프고, 정신은 몽롱하다. 날씨는 좋은 편이다. 미세먼지가 안 좋다고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편이네.라고 창밖을 보며 생각한다.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가 요즘 노래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물론 모르는 노래지만 듣다 보니 가요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노래겠지 뭐. 가사 있는 노래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만 듣는 터라 타 가수의 노래는 많이 모르는 편이다. 나는 MZ세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꼰대에 더 가까운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내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다양한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그래도 서로 기본적인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내가 유일하게 생각하는 건전한 가치관 같은 거다. 그래. 기본적인 것만 해도 기분이 상할일은 없으니 기본적인 것만 하자. 꼰대 같은 유일한 마음가짐. 이렇게 말하면 내 아이들은 뭐라고 하려나. 들은 척도 안 하려나. 뭐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 하하.


아, 강아지 미용 예약도 미리 해둬야겠다. 할 일이 많네 생각보다. 의외로 나는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냥 이건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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