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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14. 2023

생각보다 단순하게 사는 것.



바디워시제품을 새로 구매했다. 아토피가 있는 나는 향수를 사는 대신 바디용품으로 사치를 부린다. 물론 향수를 쓴다고 해서 더 나빠진다거나 하진 않지만 희한하게도 향수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나는 늘 시향지로 사고 싶은 향수에 대한 소비를 굳힌다. 그것만으로도 향은 충분하다. 그러나 몸에 바르거나 몸을 닦는 제품은 좀 다른 이야기다. 예전에는 무향이 좋았다면 요즘은 향이 있는 워시나 로션이 좋다.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랄까. 게다가 의외로 라벤더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민트향 같은 알싸함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라벤더향이 그렇게 좋다. 킁킁거리며 맡고 있는 나 자신이 스스로 가끔 한심해 보일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후각이 제일 예민하고 금방 피로해지는 법이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향을 따라갈 수밖에.



맥주 두 캔을 남편과 나눠마셨다. 기분 좋게 아울렛에 가서는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끝까지 추궁하고 나서야 두 아이의 싸움에 지쳐버린 남편이 기분이 안 좋아져서 온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아이옷을 사고, 남편옷을 사느라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우리는 각각 움직였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내가 같이 가서 아이들을 보다가 힘든 아이를 먼저 데려왔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형은 양보하기 싫고, 동생은 가지고 싶고 그 사이에서 피곤했던 남편이 먼저 지쳐버린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큰아이를 불렀다. 동생한테 뺏기지 말라고 했다. 네 건 네가 지켜야 한다고. 동생이 자꾸 뺏으려고 하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라고 했다. 마음이 약한 큰아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흐느꼈다. 

못할게 뭐야. 니 거 가져가지 못하게 해. 너희 둘이 싸우니 아빠가 힘들잖아. 마음 약한 또 남편은 그러지 말란다. 그래, 우리 집에선 내가 제일 못됐다. 나도 알고 있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뺏기는 큰애를 보면 속상하고 억지로 가져가는 둘째를 보면 화가 난다. 뺏고 뺏기는 사이. 누가 더 나쁘다 말할 수 있을까. 자기 거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 나는 그걸 우선순위로 둔다. 요즘엔 그만 좀 싸우라는 말보다 뺏기지 말아라. 뺏지 말아라.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되려 큰소리치고 울고 있는 큰애를 보다 못한 남편이 말렸다. 그만해. 애한테 화내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맥주를 권했다. 마셔 마셔. 애들 싸운 건 싸운 거고 다 혼냈으니까 기분 풀고 마셔 마셔.

얼결에 남편은 앉아서 맥주반캔을 마신다. 빨갛게 금세 얼굴이 달아오른다. 술을 잘 못하는 남편은 이렇게 금방 티가 난다. 


맥주를 나눠마시고 남편은 금방 잠이 들었고, 금세 깼다. 고기를 굽고, 우리는 그 구운 고기를 셋이서 얼른 집어먹는다. 다시 평화로워졌다. 아까 울던 큰애도, 낮잠 자고 일어나서 혼난 둘째 아이도, 고기를 굽는 우리 남편도, 쌈을 싸 먹는 나도 아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맛있네 맛있네 하면서 먹는다. 바보천지들이 따로 없군. 

막 상추에 쌈을 싸 먹으며 생각한다. 바보들 바보들. 고기한점에 다 잊은 바보들. 우리는 고기 앞에서 한 마음이 된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이 단순할까. 나는 그게 늘 의문이면서도 풀리지 않는 미해결과제 같은 느낌이다. 사람이. 생각보다 단순하다.




남편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뭐든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것. 진짜 기분 상한 건 따로 불러서 얘기할 것. 등등이다. 요즘의 나는 이렇게 생활하니 잔소리가 그렇게 크게 지겹지 않다. 되려 잔소리하는 남편은 화가 나는지 발을 동동거린다. 너 내 말 듣고 있어? 이름까지 성을 붙여가면서 부르기도 한다. 이거 해 저거 해.라고 지적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럼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준다. 뭐, 그까짓 거 해주지. 이런 심리이다. 요즘 남편은 매우 예민하다. 

나는 그가 왜 예민한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복잡한 상황들이 겹친 것 같다. 밖에서 일에 치이고, 돈에 치이고, 이제는 건강검진에서까지 주의로 나왔다. 얼마나 본인의 상황이 짜증이 날까. 바뀌어지지 않는 현실이 얼마나 힘들까 싶은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잘해주진 못해도 받아는 줘야겠다. 나는 그릇이 작으니 빨리빨리 받아서 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을 말이다. 어느 날은 괜히 별것도 아닌데(오늘처럼) 기분 나빠하는 날이 있다. 그러려니 한다. 기분 상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이해한다. 상황이 사람을 끝으로 몰아갈수록 더 뾰족해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남편이 걱정될 뿐이다. 모든 상황을 혼자 끙끙 앓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거다. 스트레스에는 약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매일을 함께 보내지만, 다 알지 못한다. 서로 물리적인 시간을 보내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성격의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어느 상황에서건 우리의 생각은 당연히 다르다. 그럼 이쯤에서 나는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떻게 한 결혼생활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이렇게나 다른데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유지해 볼 만한 건가? 싶은 것도 있다.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은 내 소망 하나정도는 남편도 같았으면 좋겠다. 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 한 가지쯤은 답이 나온다. 다만 그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야 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지루하고, 짜증 난다. 의외로 단순하게 사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어떻게 단순하게 하나로 정의될 수 있을까. 귀찮고, 성가시고, 불안하고, 초조하며 소모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사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물과, 사람들과, 그 사이들을 말이다.


나는,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남편에게 늘 무언가를 쥐어준다. 핸드폰도 내가 바꿔주고, 태블릿도 그냥 다음날 배송받아서 뜯어버리고 쓰라고 한다.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게임의 신작품을 샀다. 그는 필요 없다고 돈을 왜 이렇게 쓰냐고 하면서 내가 사준 핸드폰을 쓰고, 태블릿은 나보다 더 잘 쓴다. 게임도 물론 뜯어서 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반대의 말을 척척 알아듣는 나는 남편에게는 쇼핑광으로 보이고, 사치스러운 여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선택한 나라는 여자는 원래 이런 걸 말이다.

그 어떤 나라고 해도 남편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껴야 괜찮아진다는 것쯤은 나도 이론적으론 알고 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냥 보조적인 역할을 해줄 뿐. 



그래도, 그 정도라면. 그 간격의 온도라면 현실이 좀 덜 지루할지도 모른다. 팍팍한 살림살이 이런 소소한 이야깃거리라도 있어야 살맛이 나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하며 스스로 위안 삼는다. 나는 이런 거엔 꽤 빨리 순응해 버리는 타입이다. 변하지 않는 단순함은, 어쩌면 일상 속에서 나오는 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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