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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16. 2023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어

좋은 다짐이군. 생각한다. 생각하는 내가 아직 숨을 쉬고 살고 있다. 어제는 곧이라도 죽을 것처럼 굴더니, 오늘은 살아있다.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르는 것. 기분이란 갈대와 같아서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듯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 오늘의 나를 묻는다면, 흐림.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내 누워만 있다가 애들에게 씨리얼로 밥을 대체해서 차려주고, 다시 내내 누워있는다. 엄마 나 옷 좀 줘.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서 옷을 주고 다시 눕는다. 엄마 나 지금 공부할래. 다시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서 큰아이의 공부를 봐준다. 그리곤 다시 눕는다. 엄마 나 이제 가야 해. 또 기계처럼 벌떡 일어나서 마스크를 챙겨주고, 아이의 가방을 매 준다. 잘 다녀와. 인사하고 다시 눕는다. 그렇게 한 번을 더 반복하고 둘째를 보내고 나서야 집에 온전히 혼자 남게 되었다. 나에게 가만히 안겨있는 강아지의 온기를 느끼며 컴퓨터를 켰다. 입맛이 없으니 어젯밤에 뜬금없이 시킨 미숫가루를 꺼내 마신다. 얼음을 잔뜩 넣은 미숫가루는 달다. 물로 탄 미숫가루가 맛있을까 우유로 탄 미숫가루가 맛있을까. 골똘히 생각해 본다. 역시, 먹어봐야 알 것도 같다.


요즘 나의 정신 상태는 말이 아니기에 큰아이의 공부를 봐주질 못한다. 어제의 우울감은 극에 달해서 회식하던 남편도 나의 울음소리에 뛰쳐나왔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울었다. 남편과 같이 컵라면을 끓이면서 울고, 먹으면서도 울었다. 진정이 된 건, 남편이 잠이 든 그 순간부터였다. 내내 뭐가 그리도 슬펐을까. 에너지 소진이 금방 된 것 같다. 방전상태인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한다. 그 많던 에너지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 불안증에 휘발되었나. 쉽게도 날아가는군. 깃털보다 가벼운 나의 에너지들이 어디론가로 다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곱슬곱슬한 털이 바짝 말라있는 것 같다. 따뜻하다. 




식탁은 엉망이고, 집도 엉망이다.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기분이 흐림이 아니라 구림이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누군가 힘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나지도 않을 힘. 눈에 읽히지 않는 활자. 너저분한 주위환경. 개만 쓰다듬고 있는 무기력한 여자.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스스로 말한다.

정상이라고. 이럴 수도 있는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애초에 정상이라는 범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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