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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19. 2023

봄의 시선으로



큰아이의 사춘기가 조금씩 오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동생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크게 혼을 냈었다. 나는, 요 며칠 내내 마음에 감기가 온 듯이 아팠다. 내 마음이 소란스러우니 아이들이 왜 그랬는지 왜 다투게 되었던 건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게 혼낸 그다음 날 커피를 마시다 문득 어?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이가 사춘기가 오고 있나? 그래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나? 싶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는 금세 확신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아, 사춘기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엄청 억울했겠다. 그냥 단순한 다툼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춘기의 초입이라면 시점이 달라져야 한다. 어쩌면 그 어정쩡한 사이에 내 아이가 서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잠시 놓친 걸까.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만약 그 감정들이 사춘기의 성장과정 안에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어떻게 큰 아이의 민감함에 반응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큰 과제가 주어진 것이었다. 나는 초조함에 초등학교 선생님인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취했고, 큰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상담 요청을 했다. 뭐든, 그 상황에서 나는 움직였어야 했다. 그게 어떻든, 어떠한 방식이 든 간에.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 유연하게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나갈 것. 엄마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이 세 가지가 핵심 포인트였다. 나는 수강생이라도 된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인 이 시점에 내가 우왕좌왕하면 할수록 아이도 중심을 못 잡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에서 조력자로 넘어가는 시기가 된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면 이제는 한걸음 물러서서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어느새 한 뼘 자란 내 아이가 정말 어린이로 되어가고 있는 첫걸음을 한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시기를 지나면서 청소년기도 오겠구나. 내 마음의 감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아이의 사춘기였다. 시간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흐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직 준비를 못했는데 벌써? 이런 당황스러움이 몰려온 것이다. 



이제는 진짜로 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줘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다가왔다. 사춘기에 관한 책도 부랴부랴 찾아서 읽고, 드디어 담임선생님과도 상담을 했다.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아이의 근황을 들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건 반드시 겪어야 할 시간이었다. 다만 아직은, 설마,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내 아이를 마냥 아이로만 생각해서는 안되었다. 사실은 그건,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그랬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사실은 그랬어야 했을지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 아이도, 나도 느끼진 못했지만 사실은 우리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어느 정도 편안해진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나도 겪었던 과정이다. 먼저 경험했던 경험자로써 나는 이 시기를 누구보다도 존중해 줄 선배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과정만큼은 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우리 서로 생각이 달라도, 당연히 그럴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가닥 실이 잡히는 것도 같았다. 돌풍의 사춘기를 겪었던 내가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잘 지켜보라고 했다. 웃기지만 사실이었다. 그것만큼 날카로운 분석은 없었다. 나의 사춘기를 겪은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왠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손주가 이런 상황이니 혹시나 안 가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섭섭해하지 말라고. 내 말을 들은 아빠는 긍정적으로 수용해 주었다. 


어른들이 한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사춘기에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것이다.

스트레스 주지 마. 푸하하. 나는 웃었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나야말로 제일 잘 살 수 있겠다. 라며 대답했다. 너는 좀 괜찮냐고 묻는 아빠의 말에 나는 괜찮다고 또다시 대답한다. 아빠는, 손주의 사춘기보다 딸의 안위를 좀 더 궁금해한다. 나도 아직은, 우리 부모님의 딸이구나 싶었다. 내 아이랑 나랑 서있는 위치가 다를 게 없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봄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다가오던 봄을 설레하고 맞이했던 것처럼 내 아이에게 그만큼의 날들을 맞이해줄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씩씩한 뒷모습에 응원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오늘도 학교를 가는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부터 잘 돌보아야겠다며 다독인다. 나에 대한 다독임이 스스로에 대한 애정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더 이상의 불안들이 자리잡지 못할 정도로 나에게 귀한 대접을 스스로 할 수 있기를. 나는 사실 조금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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