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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25. 2023

컬러링북을 샀다



말 그대로. 컬러링북을 샀다. 어제 병원을 가서 약을 추가로 타고 큰 아이와 서점에 다녀왔다. 학교에 못 간 아이는 배가 아프대서 소아과에 갔더니 가벼운 장염이라 했다. 집에만 있으면 게임영상만 볼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다. 같이 버스를 타고 정신과를 가면서 엄마는 어디가 아파서 가느냐는 물음에 마음이 아파서 간다고 했다. 내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가볍게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아이를 따라서 갔다. 우리는 약을 타온 후 나와서 같이 죽집에 갔다. 아이는 죽을 먹고, 나는 비빔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갔다. 선생님께서 컬러링북을 추천하길래 컬러링북을 하나 사고, 에세이집도 두 개나 골랐다.

아이에게도 책 한 권 골라 오라고 했다. 책을 잔뜩 사고 나오는 길에 디카페인 커피도 한잔 샀다. 아이가 좋아하는 탕후루도 두 개나 샀다. 우리 집에 가서 먹자. 배가 아팠을 텐데도 날 잘 따라다녀주었다. 손을 잡아줬다.

혼자 있어서 외로웠는데, 아이랑 함께 있으니 정신이 없어서 좋았다. 가끔 이렇게 데이트하듯이 학교 빠지고 평일에 다니는 것도 좋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선생님이 추천해 준 컬러링북은 나쁘지 않았다. 시간도 금방 흘러가고 잡생각이 사라진다.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감정에 들지 않게 한다. 나는 어렵지 않은 컬러링북을 골랐다. 단순하게 생긴 그림이 딱 좋았다. 한때는 미술학원에 등록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여전히 뭔가가 주어져서 해내야 한다는 건 부담스럽다. 딱 이 정도가 좋다. 언제든지 지겨우면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취미들. 바뀔 수도 있는 마음에 가볍게 대응할 수 있는 것들.

전화로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도 받았다. 선생님은 어땠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그냥 별로였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웃었다. 경험한 셈 치는 건가. 그건 비웃음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음. 그냥 웃음이었다.

우리 선생님은 좋다. 뭐라 형용할 순 없지만 좋은 분이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지만 객관적인분이다. 나는 정신과 두 번만에 그런 주치의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한 사람정도는 늘 필요로 했으니 말이다.




집은 여전히 엉망이다. 마음은 조금 누그러진다. 약 효과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인 것 같다. 더 이상 울고 싶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엄청난 효과군.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느끼는 건,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크다. 정말로 크다.


아니면 어제 선생님을 보고 오고, 큰아이와 시간을 보내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난 가끔 큰아이와 시간 보내는 것이 좋다. 학교도 빠지고 보내고 싶을 정도로 좋다. 아이는 어떨지 모르겠다. 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단순함이 좋다. 나처럼 복잡하지 않아서. 나랑 맞는다.



육아가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실은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한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괴롭게 만든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여유가 없으니 자기 자신을 돌볼 수가 없다. 그건... 힘들다.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건 정말.. 정말 별로인일이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어제는 좋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가끔 그렇게 빠지고 다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나는 확실히 불량엄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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