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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27. 2023

빈 화면을 응시할 때가 많다

가끔, 이렇게 빈 화면을 응시할 때가 많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를 때 주로 그런 편인데 왠지 오늘 아침이 그런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쌓인 설거지부터 했다. 어떻게 이렇게 쌓아놓고 살았담. 식기 세척기 없으면 어떻게 산담. 아무 생각 없이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그리고 누가 입력이라도 한 듯 어제 빨래한 빨랫감들을 다시 한번 더 헹굼 탈수를 누른다. 빨래는 언제쯤 꺼내질 것인가. 나는 돌아가는 세탁기를 뒤로 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에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을 틀었고, 큰아이는 나의 음악과는 상관없이 유튜브를 본다. 둘째 아이는 만들어진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고, 남편은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 모두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이 나쁘지는 않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하지 않지만 나는 이 시간이 불편하지 않다. 가족이라고 24시간 내내 말을 섞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조금 채워진 하얀색 바탕의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어제는 내일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일이 되니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그토록 바란 내일은 이렇게나 빨리 왔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니.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 줄 알았던 내 착각이었다.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마치 지나가다 껌을 밟은 것 마냥 몸에 붙어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잔여감이 남아있듯이 감정이 그런 것 같다. 나는 빠르게 생각의 전환을 해보려 하지만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은 나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차가운 물에 얼음을 가득 담고 생각 없이 씹어먹는다. 나는 열이 많은 여자라 늘 이렇게 식혀주어야 한다. 결국 피부를 견디다 못해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한 달에 한번 가는 것도 힘들어서 작년에 가던 대학병원도 그만두었는데, 다시 대학병원이다. 다시 한 달에 한 번씩 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가야 한다. 피부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왔다. 아, 어쩌면 이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 지친 피부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아토피는 정말 사람을 끝까지 괴롭힌다. 어디서든, 어느 상황에서든 말이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요즘 대인관계를 맺는 게 피곤하다. 뭔가 에너지 소진이 금방 된다고 해야 하나.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원래 저질체력을 가진 터라 어느 곳에 에너지를 한번 쏟으면 금방 방전된다. 사람들이랑 말 섞는 것도 피곤하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많이 가리는 편이다.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한데,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에너지가 짧게 충전되고 금방 방전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학병원에 예약한 김에 정신의학과도 가봐야 하나. 아빠의 말이 떠오른다. 대학병원 가서 진료 보고 오라고 했던 아빠의 목소리. 10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는 우리 아빠는 자신의 주치의를 추천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선생님을 바꿀만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유를 찾게 되면 바꿀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없다.

한 달에 한번 피부 때문에 가는 것도 겨우겨우 가는 거다. 내가 운전해서 가면서도 피곤하다. 고작 5분도 안 되는 진료와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분이 넘게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과, 왕복 두 시간에 걸쳐 운전해서 겨우 운전자리를 찾아야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내게는 피곤하고,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필요해서 찾는 거니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는 일들이기를 나는 바란다.


뭐든, 호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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