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우울해. 비도 오고 우울하다. 다 귀찮고 잠도 자고 싶은데, 잠도 안 오고 뭔가는 하고 싶고, 그냥 있으려니 심심하고 전화할 사람도 없고, 전화 올 사람도 없고, 마실 물도 다 끓였고, 빨래도 다 접었고, 청소도 대충 했는데 우울하다 우울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오랜만에 유튜브를 틀어본다.
요즘 유튜브도 약간 질려서 음악 듣고 싶을 때만 트는데, 오늘은 기분도 가라앉고 그래서 최근에 관심 가진
양봉업자.... 의 유튜브를 본다. 그렇다. 나는 원래 곤충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여잔데, 얼결에 양봉업자의 유튜브를 접하게 된 뒤로 뭐에 홀린것마냥 벌들을 보고 있다. 벌도 아니다. 양봉이니 거의 벌떼 수준이다.
이게 뭐라고 나는 또 열심히 안 본 채널을 찾아본다. 내가 안 본 채널이 있었나. 거의 없군. 좋아! 새롭게 올라온 동영상을 보자. 나는 따끈따끈한 최신 영상을 틀었다. 그 양봉업자의 일상은 거의 매일 벌들을 돌보거나, 가끔 키우는 애완동물들을 보여준다거나, 꿀을 딴다거나, 아니면 도망친 벌들이 있는지 벌통을 확인한다거나 하는류의 일상인데,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본다. 심지어 그 영상을 볼 때면 벌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게 뭐라고 나는 진지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놓칠세라 먹던 과자도 멈춰가며 본다.
벌들이 없어지면 내가 다 안타깝고, 여왕벌이 뭔지 그 수많은 벌떼들 사이에서 영상으로 찾아보기도 한다(그러나 나는 아직 못 찾는다. 역시 왕초보는 어쩔 수 없나) 말벌이 나와서 잡는 모습을 보면 오! 진짜 대단하다. 그런 존경심까지 드는 거다. 최근엔 꿀을 채집하여 곧 꿀을 판매한다고 하는데, 왠지 못 먹으면 섭섭할 것 같아 일단 주문페이지가 열리는 걸 지켜봐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하는 셈이다. 정말로 나는 양봉업에 진지하다. 내가 할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일벌들을 보고 있노라면, 살기 위해선 곤충이나 사람이나 똑같이 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를 게 없군. 돈 벌려고 나가서 일하는 내 남편이나 양봉통에서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는 일벌이나,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이런 뭔가 우주의 동질점을 찾는다고 할까. 여하튼 나는 이게 뭐라고 열심히도 보고 있다. 내가 본 영상은 최근에 고양이를 맞아들인 양봉업자는 고양이가 인턴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정식으로 취직을(?)하게 된 고양이의 집을 지어주는 영상이었다. 그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아서, 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인데, 일반 모래를 사용하고 있는 이 유튜브에게 드디어 고양이 모래 광고와 함께 샘플이 보내진 것이다. 유튜버는 열심히 일단 고양이 집을 만들고 (그 과정도 중간중간 웃기다) 기존에 쓰던 모래를 버리고 새 모래를 깔아주었는데, 고양이가 안 들어가서 한참을 있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음날 영상을 찍게 된. 뭐 그런 이야기인데,
그걸 보면서 제발 들어가라... 하고 마음속으로 빌기도 하고, 양봉업자의 집 만드는 솜씨에 감탄하고, 30만원을 거금 들여 산 캣 휠타워에 관심을 안 가져서 같이 속상해지는.. 뭐 정말 일상을 담은 유튜브를 보면서, 이게 뭐라고 나는 진지하게 보고 있나. 그런데도 보는 걸 포기할 수 없다. 양봉업자 일상이 뭐라고 이게 이렇게 재밌나. 가끔, 이유 모를 웃음을 깔깔 웃어대며 유튜브를 보고 있는 나를 남편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보지만 나는 이렇게나 남의 일상을 보는 게 재밌다. 그래서 다들 찍나 보다. 유튜브를.
꿀벌도 이젠 하도 영상으로 봐서 무섭지도 않다(무서운 건 말벌이다) 꿀벌이 와서 내 주위를 맴돌다가 팔에 한 번은 앉은 적도 있는데, 평소 같았음 오만가지 호들갑을 떨었을 내가 그거 조금 봤다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나한테 꽃향기 나니? 하는 망상과 함께 말이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망상이다. 꽃이라니.
한없이 우울 해질 땐, 그래. 뭐라도 해야 한다. 누워서 유튜브를 봐도 되고, 음악을 들어도 된다. 우울한 음악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사람은 결국 바닥을 쳐야 올라오는 법이라는 걸 요즘 깨닫고 있는 것 중에 하나다.
바닥을 애매하게 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쳐야 올라올 수 있다. 애매한 바닥을 치면 애매하게 우울해져서, 다시 의욕이 내려간다. 정확히 바닥을 치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음을 알아야 올라오는 것도 천천히 올라오게 된다. 그렇다. 나는 요즘 우울이 깊게 가지도 않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음도 안다. 내가 매달린다고 해결될 돈문제들도 아니고, 속상해봤자 나만 손해고, 내 시간만 아까운 거다(최근에, 나는 돈문제 때문에 좀 힘들었다 심적으로. 내가 도움되는 게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 그냥 우울한 노래를 아예 틀어버리거나, 지금처럼 양봉업자의 콘텐츠를 본다. 나는 내가 즐거웠으면 좋겠고, 웃었으면 좋겠다. 꿀벌을 보면서 꿀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도 들고, 진짜 저런 꿀은 무슨 맛일까. 시판에서 파는 맛이랑 똑같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이게 뭐라고 진지한 건지. 그런데 나는 꽤 진지하다. 이 분이 꿀 판매 창을 열면 꼭 사 먹고 싶을 정도로 진지하다. 내가 봤던 꿀벌들이 만든 꿀이니, 뭔가 특별할지도 모른다. 먹으면서 꿀벌 생각이 날지도 모르고, 양봉업자의 노고가 생각날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우울한 날 유튜브를 보며 깔깔거린다.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은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