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아이의 방학식이다. 어제 하루 종일 예민하던 내게 왜 그러냐며 묻던 남편이 오늘 방학식이라고 하자, 아..... 단번에 알아듣는다. 무슨 말인지 알지? 하니까 알겠단다. 그래, 방학이 돌아왔다.
방학 기간 동안 남편은 며칠 안 되는 휴가를 쓸 생각이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여자마냥 멀뚱거린다.
이번 방학은 어디 놀러 가서 몇 박 며칠 묵을 형편은 안돼서, 당일치기로 여기저기 다녀와볼까 한다. 완전 성수기라, 어딜 가도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휴가를 보낼 수 있기에, 나는 그렇게 돈을 쓸 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그렇게 쓸 비용도 없다. 남편은 나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맞아. 우리 지금 좀 힘들지.. 하면서
오전부터 아파트 제초작업이 한창이다.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태우러 나가면서 여름의 풀냄새가 여기저기서 곳곳 새어 나온다. 제초작업을 하니 아파트 단지에 풀냄새가 가득이다. 음, 이런게 풀냄새구나. 나는 풀냄새를 맡으며 여름을 음미한다. 오전 일찍부터 시작한 제초작업의 소리가 소란하다. 사람들이 일일이 와서 뽑힌 잡초를 줍기도 하고, 기계로는 잡초를 제거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게다가 나무의 수형도 보기 좋게 잘라놓는다. 단순히 풀만 뽑는 게 아니라, 여러 작업을 한다. 나무의 모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 올리브 나무는 나로 인해 여기저기 가지치기당한 이후로 가지가 더 이상 안 뻗는다. 쩝.. 이게 바로 프로와 어설픈 아마추어의 차이인가. 나는 아마추어도 못된다. 그냥 마구잡이로 가치지기를 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생 초보는 함부로 건드려선 안될 나무를 건드린 셈이다. 그냥 뒀으면 예뻤을 나무를.
위잉 위잉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뽑히는 잡초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둘째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동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꾸벅. 인사를 하고, 날씨가 참 덥다고도 말했다. 어른들이 참 부지런하다. 모두 나보다 나이도 있으신 어르신분들이다.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아저씨들도, 우리 아파트를 청소해주시는 이모님들도, 모두 부지런하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역시 일이 있어야 해.라는 생각도 들고 요즘엔 어르신들이 더 열심히 사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묵묵히 하면서 산다. 나는 요즘 이런 게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열심히 사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 이모님들을 보거나,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아 저런 게 열심히 사는 거구나 싶다.
삶의 흔적이 보이는 얼굴. 그냥 하는 거죠 뭐, 하고 멋쩍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웃음 등을 보면서 아차,
깨닫는 거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은 가정을 돌보는 일이니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그렇게나 싫었는데, 가정에 충실한 게 의외로 생각보다 괜찮다. 물론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애써 굳이 어렸을 때처럼 따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베이비 시터 써! 이모님 쓰면 되겠네! 내가 무슨 식모니? 라며 남편에게 따지고 들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참으로 어렸던 나였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눈에 담기에도 벅찼던 시절, 신입사원이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던 남편만 들들 볶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일이라도, 가치는 있다. 남편과 내가 한 배를 타고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항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밖에서, 나는 안에서 서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우리는, 한 팀이니 서로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어야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육아 동업자랄까.
든든한 동업자가 있으니, 항해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큰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책가방을 같이 챙겨보고,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보는 등등.. 이 모든 일들이 가치 있게, 그리고 생동감 있는 루틴으로 변해간다.
다만, 오늘부터 방학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이 쌓여있는 것 빼곤.
아, 방학이란 무엇인가. 나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곧 올 큰아이를 기다린다. 후덜덜.
잔뜩 긴장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