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하는 것이라곤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쳐 남은 분량을 읽는 것이다. 바르게 그리고, 경건하게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무엇이든 나갈 준비만 아니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아이들과 남편 역시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긴다. 우리는, 어쩌자고 약속을 덜컥 잡아버린 걸까? 나는 조금 귀찮아진다.
차에 타서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른다. 너무 두껍지도 않은 책으로. 기왕이면 얇고 얇을수록 좋겠지. 차에서 책 읽으면 이제 멀미할 나이니까. 나는 소설책을 읽을지 에세이집을 읽을지 이 와중에 고민한다. 씻지도 않은 채로. 나가긴 할 것인가. 의문이 든다. 약속 시간도 정해져 있고, 이제 서둘러야 하는데 우리 가족 모두가 느긋하다. 날이 꿀꿀해서 그런가. 모두들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남편은 티비를 보고, 나는 글을 쓰고, 아이들은 게임을 한다. 각자 서로의 시간이, 즐겁다.
최근에 어떤 에세이집은 읽다가 덮었다. 처음엔 일상에 관한 루틴 얘기였는데, 점점 끝으로 가면 갈수록 작가의 취향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나는 일상의 루틴을 읽고 싶었는데 굳이 너님의 취향까지..? 그런 것까지 읽어주기엔 나의 시간은 한정적이고 일단 매료되지 않는다. 더 읽을 시간이 아깝다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모르는 너님의 취향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뻔했다. 책이라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하마터면 작가에게 상처를 줄 뻔했다. 다행이다. 텍스트로 이어진 사이니까.
요즘엔 일상의 루틴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나는 루틴이 어땠더라. 그때그때 바뀌는 것 같다. 고정된 루틴을 가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커야 하고, 나는 조금 더 늙어야 한다. 과연 그렇다고 일상의 루틴이 정해진 것처럼 일정해질지는 의문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읽다 만 책 보다 좀 더 몽상적인 책은 잘 읽혔다. 그 책은 어휘가 쉽지 않았는데도 훨씬 더 잘 읽혔다. 나는 확실히 취향보단 몽상 쪽인가. 아니면 날씨 탓인가. 뭐 어쨌든 한 권이라도 읽어냈다니 대단한 일이다. 큰 수확을 거둔 것 마냥 기쁘다. 노트 같은 건 쓰지 않지만 이렇게 또 한 권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 내게는 엄청난 일이다. 앉아서, 누워서, 엎드려서 어떻게든 읽고야 만다는 나의 의지가 또 한 번 해냈다. 이런 내가 뿌듯하다.
그건 꼭 책이 재밌어서도 아니고(물론 이 이유가 가장 커야 한다) 읽는다고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를 보면 끝을 본다는 성격이 아니기에 이런 행위가 굉장히 자부심 있게 느껴진다. 물론 읽다만 책들도 수두룩하다.
아 이제 정말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어. 정말이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다니. 아쉬움을 뒤로하며 백지장에 끝맺음을 하려고 하는데, 뭐라고 써야 하지. 망설여진다. 그렇게 계속 망설여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