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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Mar 24. 2023

37년 만에 만나는 동생

독일과 한국



2022년 9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오는 내내 긴장하다가 거의 도착했을 무렵 잠시 기분이 바뀌었다.

전혀 아무렇지 않아 지자 냉랭한 나의 반응에 오히려 그녀가 오해를 할까 걱정이 되었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스스로 이를 잊어버리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방금 전 도착해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플랫폼 사진을 보내왔다. 중앙 플랫폼으로 올라와 두리번거리다가 사진과 똑같은 출입구를 찾았다. 다시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나와 함께 동행한 파트너가 그녀를 먼저 발견했다.


“아! 나 그녀를 본 거 같아. 저쪽에... “

이 말을 듣자 다시 가슴이 뛰었고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입구에 다다르자 캐리어를 한쪽에 두고 서 있는 한 동양 여자가 보였다. 남색과 빨간 줄 무니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밝은 미소로 내쪽으로 걸어왔다. 우린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덥석 어깨를 당겨 안았다. 나도 모르게 힘을 꽉 주어 그녀를 끌어당겼고 예상치 못했던 눈물이 주룩 흘렀다. 우리는 잠시동안 그렇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눈치 없이 혼자 주책스러울까 봐 걱정했는데 그녀 또한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 뜨려 졌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멀찌감치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파트너와 눈이 마주쳤다.


감정을 추스르고 머쓱하게 몸을 떼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생과 너무 많이 닮았다. 동생이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욱 그랬을 거다. 둘이 씽둥이가 맞다. 영락없는 내 동생이다. 그녀 또한 나를 바라보며 놀라우면서도 반가워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때? 나 J랑 많이 닮았어? “


“응, 정말 똑같아. 얼굴만이 아니라 네 표정 하나하나가 너무 닮았어.”


난 손가락을 내 얼굴에 대고 입가, 광대, 눈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는 행동과 질문을 할 때 진지한 눈빛으로 추켜올리는 표정이 내 동생과 똑같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체형도 동생과 비슷했다. 그녀는 우리가 서로 닮았다고 말했다. 살면서 한국 사람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그녀는 본인과 닮은 나를 매우 반갑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작은 호텔 밖에 있는 테라스에 나와 함께 담배를 피웠다. 피붙이를 떠나서 함께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이미 그녀가 많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흐렸고 잠시 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있는지 찾아보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내내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동생과 이렇게 손을 마주 잡고 걸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려고 했던 거 같다. 이 낯선 외국에서 친구와 손을 잡고 걷고 있다니, 그것도 나와 닮은, 아니 나의 동생과 말이다. 동생과 너무 닮은 그녀지만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게 내겐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 동생이지만 약간은 멀게 느껴지는,,,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잠시 비를 피해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자 주위가 조용했다. 스테피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냐며 어서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과 영상통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나는 카카오 비디오콜로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쯤 되었을 거다. 내가 이 시간쯤 연락할 거라고 미리 일러두었기에 다행히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말끔히 샤워를 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난 아빠와 잠시 얘기를 마친 후 바로 스테피를 화면에 비추었다. 분위기는 양쪽 간에 들떠있었고 너무나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스테피와 그녀를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에 반가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나도 그렇지만, 36년 만에 처음 보는 딸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많은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저 반가운 마음이 컸으리라. 잠시 후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스테피는 그동안 한 번도 엄마와 연락한 적이 없었다. 처음 보는 엄마와 인사를 하는 그녀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사실 우리가 그녀의 존재를 알고 난 후 2년 동안 그녀는 내게 엄마에 대한 궁금점을 여러 번 털어놓았었다. 왜 엄마는 그녀에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지, 죄책감을 떠나서 다시 딸을 찾았다는 기쁨이 더 큰 거라 생각한 자신이 틀렸는지, 아니면 이게 정서적 차이인지 나에게 설명해 달라고 물었었다. 어쩌면 그녀를 가장 서운하게 했을 엄마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고맙게도 매우 반가워했다. 엄마는 며칠 전 내가 본 얼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언니가 휴대폰을 건네받으며 인사를 건넸다. 언니 또한 스테피를 보고 J와 정말 많이 닮았다며 놀라워했다. 중간에서 안 되는 영어로 동시 번역을 하느라 나름 애썼지만 여전히 안타까웠다. 말이 안 통하니 서로 나누는 대화가 한정되어 있어 그저 반가운 얼굴을 내비치는 게 최선이었다.


가장 기다렸을 J와는 잠시 후 따로 통화를 하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거세져 얼른 자리를 잡았다. 스테피는 다행히 가족과의 연락을 매우 좋게 받아들였다. 특히 너의 엄마가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에 괜히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은 것에 나는 엄마의 입장을 나름대로 대변을 한다고 했지만 그녀의 이해를 백 프로 얻을 수 없어 답답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 풀렸다.


얼마 후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이들을 재워서 이제 시간이 나니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스테피의 얼굴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이 순간을 아마 가장 기대했을 것이다.

비디오 콜 연결음이 들리자 스테피는 바짝 긴장한 듯 보였다. 마침내 연결이 되었고 스테피와 동생이 서로를 마주했다.


“하이!”


둘 다 바로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서로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스테피와 계속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동생.

역시나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큰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이게 어디인가! 쌍둥이 자매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라니! 나 또한 이 순간을 매우 기다려왔고 사실 이 목적이 가장 컸다. 스테피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그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여태 영상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말이 안 통해도 잠깐 얼굴을 볼 수도 있었지만 그게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보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함께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나는 스테피에게 방으로 건너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바로 옆인 그녀의 방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내내 화색이 돌았다. 아직도 이 순간이 믿기지 않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녀의 방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국의 문화와 그들의 생활방식.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나 또한 그녀의 생활이 어떠한지 물었고 각자 좋아하는 취향과 관심사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스테피는 부모님이 왜 자신을 입양해야 했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 했고 이에 대해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내가 아는 대로 전부 말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선택에 대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라 이해한다고 했고 자신은 지금의 부모님께 매우 감사하고 본인의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난 미안하면서도 부끄러운 속내를 이야기했다. 내가 입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노라고. 감히 꺼내지 못할 말일수도 있지만 그냥 그녀에게 솔직하고 싶었다. 이건 그녀의 마음을 조금 좋게 하려는 치졸한 수작이 아니라 내 진심이었다. 스테피는 매우 놀라워하며 J 또한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면서 그렇게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자신에게 그 말은 매우 불행하게 들린다며.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인생을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고 또 이렇게 서로를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스테피와 만나기 며칠 전, 그녀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우연히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타투를 보았다. 전화를 끊고 난 생각에 잠겼다가 동생에게 카톡으로 너의 문신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J의 양쪽 손목에 새겨진 작은 삼각형은 스테피의 양손목에도 새겨져 있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심지어 서로에 대한 존재조차도 몰랐던 둘은, 같은 해에 똑같은 모양의 타투를 같은 위치에 새겼다.


언젠가 둘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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