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있는 2년 동안 난 자연을 만끽하는 자유를 얻었지만 외로움의 고통에 꽤나 깊이 시달렸다. 외로움이 사람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 수도 있구나라고 처음 깨닫는 계기였다.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제주인만큼 이곳은 여행객이거나 나처럼 육지에서 온, 얼마 버티다 도망가는 뜨내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을 내어줄 만한 진정한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마저 친해졌다고 생각한 동생도 몇 개월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 다시 완전히 혼자가 된 상황에서 외로움은 고독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제주는 나에게 황량한 광야가 되어버렸다. 종교에 의지하려고 했지만 어떠한 연유로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만난 사람이 있다. 이 친구는 비엔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형적인 오스트리아인이다. 그리고 난 지금 비엔나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 사는 그의 친구가 5년 만에 오스트리아에 돌아와 아파트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오늘 아침, 난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두 남정네는 부엌에서 떠들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들이 독일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난 얼마 후 자연스럽게 자리를 뜬다. 방에서 혼자 무얼 하느라 한창 집중해 있는데 남자친구가 이쪽으로 와보라며 나를 불렀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우리 내년에 발리로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본인의 절친인 플로와 그의 여자친구, 그녀의 아들 그리고 발리에 사는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의 아들, 마지막으로 본인과 나 그리고 나의 아들까지. 가족이라기보단 한 세트씩 총 셋 세트가 모여 함께 여행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아주 멋진 시간이 될 거라며.
나도 잠시 상상을 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가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뭐야 그럼 난 아들을 데리러 한국에 들렀다가 발리에서 널 만나든가 해야 되겠네?”
“어? 아니면 한국에 같이 가도 되지. 그때까지 네가 날 너의 가족들에게 숨기지 않는다면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친구가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설마 정말로 네 아들이 M에 대해서 몰라? 혹시 네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알아? “
“아니”
“내가 보여주기 창피한가 보지”
남자 친구가 농담으로 한 말인 건 알지만 늘 이 부분에 대해 난 항상 분명하지 않았다. 아까 그 세 커플을 정리하자면 세 남자는 서로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은 아주 절친인 사이고 각자 사귀는 여자 친구는 이혼한 경험이 있고 그전 남편 사이에 자식이 있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여자친구의 아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고 사이도 좋다. 본인의 자식은 아니지만 대하는 마음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남자친구 또한 늘 나의 아들에 관해 긍정적이고 진실된 마음으로 대해왔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아들과 볼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고 그게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그런 복잡할 수도 있는 관계를 그렇게 심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조금 더 오픈된 정서와 그런 경험이 쌓인 탓이고 나의 자라온 환경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므로 아직 그 사회, 한국에 있는 나의 아들 또한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아들과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대화가 그쪽으로 흘렀다. 아들에게 내가 먼저 물었다.
“아들, 요새 마음에 들어오는 여자친구 혹시 있어?”
“아니.”
올해 중학생이 된 녀석이라 곧 이성에 눈을 뜰 거라 예상하고 요새 자주 하는 질문인데 항상 ‘노’라는 대답이다. 오늘도 역시 아니라고 했지만 친구 한 명이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걸 보면 아들도 이제 이성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남자친구 생겼어!”
예상대로 아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혹시 보고 싶어? 궁금하면 보여줄까?”
난 아들이 원하면 사진까지 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고 괜히 말을 꺼낸 건가 잠시 후회했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할 시간이니 말 꺼낸 김에 확실히 하려고 마음먹었다.
“엄마가 어떻게 남자친구가 있어? 말도 안 돼.”
“왜 엄마는 남자친구를 가질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엄마를 어떻게 보고…!”
잠시 후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아직도 나와 아빠의 관계에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건가?
“혹시 아빠 때문에 그런 거야? 왜 엄마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
“응 아빠 때문인 것도 조금 있고, 그냥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같은데?”
:“아빠 때문인 거는 뭐 때문이야?”
“엄마랑 아빠 이혼한 것도 아니잖아.”
정말 깜짝 놀랐다. 아들은 남편과 내가 이혼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정확히 기억한다. 아들이 제주도에 와서 둘이 바다 보러 버스를 타고 가던 날, 난 아들에게 아빠와 이혼한 사실을 알렸고 우린 지금 친구 같은 사이이고, 이게 더 좋다라고.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고 해서 엄마가 아들을 못 보게 되는 건 아니라고. 우린 언제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진지하게 얘기했고 이에 대한 아들의 질문에도 충분히 답을 했기에, 그리고 여태 엄마 없는 삶을 보내왔기에 아들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럼 아들은 엄마가 같이 안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엄마가 서울에서 사는 걸 싫어했으니까, 그래서 제주도에 간 줄 알았지.”
그럼 지금 이혼 사실을 알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았냐는 말에 이미 둘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후회가 치밀었다. 부모가 이혼한 것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을 했다니.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았다. 아들은 왜 여태 한 번도 내게 같이 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나. 아들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받아들이고 버틴 것일까. 나처럼 직접 결정한 게 아니라 부모의 결정으로 인해 그렇게 살게 되었다. 다행인 건 아들이 커가면서 본인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는 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인생, 아빠의 인생도 그 각자의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기서 센티하게 생각하면 그러하도록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 난 여기 사람들만큼 쿨하게는 못하겠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들의 생각을 듣고 나의 상황에 대입해 보면서 적정한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내려고 한다. 가장 멋진 시나리오는 아들이 언젠가 이곳에 와서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바라보는 것에 마음을 열고 직접 겪어봤으면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 내가 당장 걱정하고 있는 것을 단번에 무너뜨릴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도 해 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더 창의적인 삶을 살자.
자신감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