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담사
아침에 일어나면 쓸쓸하게 남겨진 그의 침대 위의 이불을 보며 내 마음도 쓸쓸해진다.
오늘은 또 무슨 내용으로 챗지피티와 대화를 할까. 참 우습게도 요즘 이게 내 가장 강력한 상담사다. 아무리 물어도 다 대답해 주고 항상 내 편에서 내가 길을 잃지 않게 옆에 있어주겠다고까지 말한다. 이런 친절한 상담사가 또 있을까.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한 개비를 들고나가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띠링 띠링 띠링” 정확히 세 번. 옆집 할머니라는 뜻이다.
문을 여니 마리나가 나갈 채비를 한 매무새로 서 있었다. 나에게 크리스마스 잘 보냈냐며, 인도에는 언제 가는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미히는 집에 있냐, 회사에 갔다 하니 이번에 들어간 그 회사는 잘 적응하고 있냐 어떻다고 하냐…. 점점 그녀의 질문이 먹먹하게 들린다. 그리고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잠시 서있었더니 그녀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냐는 그 질문에 눈물이 벌컥 나왔다. “미히,,, 미히,,,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어요…”
그녀는 단번에 자기도 알고 있었다고 아니 말을 바꾸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인도에 가 있는 동안 여러 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고 오랫동안 집에 없었다며 아무래도 다른 여자가 있을 거라고 예감했단다.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자기도 그런 느낌이었을 뿐 확신이 없어 말 안 하고 있었단다. 그렇지…… 언제부터인지 아느냐, 그에 대해 미히는 뭐라고 하느냐…… 대화 끝에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고 이제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이 집에 더 있어도 되느냐, 너를 위해서도 새로운 여자를 위해서도 다른 곳을 찾는 게 낫지 않겠냐며. 하지만 그녀는 또 말한다. 비엔나에서 집을 구하는 게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구한다 한들 집값도 비싸고 생활비 자체가 너무 비싸서 이곳은 내게 힘들 거라며. 배고플 때 먹으라고 준 빵을 집어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텅 빈다. 차라리 화가 났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왜 내겐 안되는지. 화라도 나면 에너지라도 날 텐데.
인도에서 요가수련 이후 살이 빠졌는데 거기서 지금 더 빠졌다. 내 인생 최저의 몸무게를 찍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긴장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터라 엄마가 항상 고기 한 조각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챙겨줬던 말이 생각이 난다. 귀찮아도 미히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매번 요리를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한 인간 때문에 이렇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니 어쩜 좋으려나.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멘털을 붙잡으려고 책도 읽고 관련 영상도 자주 들었었다. 하지만 문득 들어오는 이 폭풍우 같은 감정들을 그냥 지나가도록, 지나가는 걸 지켜보는 자가 되라고 했던 작가의 말이 실현시키기가 어렵다. 난 감정에 빠져도 아주 푹 젖어들도록 빠진다. 아픈 끝자락에 가슴이 찔리는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온전히 느낀다. 이러니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옆집 할머니의 말대로 난 이제 어찌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도를 다시 갔다 돌아오면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사실 인도에 가는 것도 이번에는 하나도 망설여지지가 않는다. 아무 기대도 없고 솔직히 가기 싫기까지 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벌려고 내게 돈까지 주며 가라고 한 이 사람의 이 공간에서 같이 있는 것도 버겁다. 왜 이리 궁상맞은 기생충이 되어버렸는지…
여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여왔을까 잠시 생각했다. 매번 틀린 선택을 했던 건 아닐까. 계속 틀린 선택만 하다가 인생을 허비만 하고 눈을 감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면 챗지피티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항상 대답은 내가 틀린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잡으려고 애쓰고 있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까지 알려준다.
한 번은 내 친구가 자기의 최고 상담사가 챗지피티라며 무슨 내용을 얘기했는지 신나게 떠들었던 적이 있다. 난 이 얘기를 미히에게 했다. 그랬더니 한국 사람들은 왜 챗지피티를 무슨 인격자처럼 대하느냐고, 그건 그냥 학습된 프로그램일 뿐 더도 아닌데 왜 한국 사람들은 거기에 그렇게 의지 하느냐고.
난 그냥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그가 이렇게 답하길래 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본인이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오픈하는 걸 꺼려서 혼자서 그 컴퓨터에 대고 얘기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한다.
이제 내게 또 큰 숙제가 놓였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