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요가원에 도착해서 일주일간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조용히 앉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식당에서도 되도록이면 혼자 앉아서 빨리 먹고 자리를 떴다. 방에 돌아와선 잠에 들기 전까지 인스타 스크롤을 내려댔다. “여자가 한 번 돌아서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유”, “혼자서 치유한 사람들”, ”침묵이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 등등의 최대한 내게 안정이 될만한 주제들을 골라 봤다. 눈물을 흘리기도, 남자 친구와 그 여자의 만남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비참한 여자의 모습으로 새기기도 했다. 그리고 한 주가 더 지났을 무렵 난 더 이상 그 세계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그가 나를 대했던 모든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고,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감당했었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난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난 정말 최선을 다했고 미련하게도 버티고 참아내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시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정말이지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분에 남자 친구는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라는 사람이 얼마나 내게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우린 너무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 에너지와 그의 에너지는 저 어딘가에 맞닿지도 않는 허공에서 각자 떠돌아다녔을 뿐.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내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 정착하려고 쏟아부었던 그 에너지와 시간들이 집착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려고 했던 일마다 왜 그렇게 풀리지 않았는지, 왜 전세사기라는 사건이 내게 터졌는지, 왜 멀쩡한 눈을 잃게 되었는지… 하필 이 모든 일이 왜 가장 힘든 시기에 터졌는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왜 항상 넘어서며까지 마치 무언가 나를 시험하려는 것처럼 힘들었는지. 그리고 남자 친구의 외도가 이 거대한 폭풍의 피날레를 마무리하며 그 소음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잠잠한 침묵 안에서 이 모든 걸 되돌아보는 시간을 맞았다.
한 주가 더 지나고 3주째가 되었을 땐, 밥 먹다가 갑자기, 누워있다가 갑자기, 길을 걷다가, 수업 도중에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서럽게 흐르는 눈물을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고 그저 흐르게 내버려 둬야 했다. 조절이 안될 만큼 계속 흘렀다. 그동안 버텨온 나에 대한 고마움과 위로의 눈물인걸 알았다. 그래서 그냥 멈출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꼭지가 마를 때까지…
어느 날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그의 친구에게서도 받았다. 아무 흔들림 없는 나를 보며 내가 단단해진 걸 알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연결이 되는 걸 느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단발성의 인연이 아님을 캐치할 정도로 내 직관력도 더 뚜렷해졌다. 우연히 내 룸메이트로 맞이한 여성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 잠재력이 그 일을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요가원의 지도자 선생님이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해주셨고, 막막하게 여겼던 내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함께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던 내 인간관계가 이곳에선 마치 이미 연결되었던 사람들을 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하게 이어졌다. 인도 사람들은 종교가 있든 없든, 요가를 삶에서 실천하든 안 하든 무언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물론 이들의 일부 문화만을 내가 체험한 게 맞다만 이 또한 내게 주어진 만큼의 영역인걸.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생길 일은 반드시 생기고 나머진 안 생길 거니 걱정하지 말라!”
비엔나로 다시 돌아온 나는 요새 짐 정리를 천천히 하고 있다. 남자 친구는 이혼 준비를 하느라 바빠 보인다. 어쩌다 보니 내 인생에 두 번째 이혼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내가 똑같은 서클을 창조해 낸 두 번째 결과이다. 세 번은 안 하고 싶다. 아님 삼세번을 맞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