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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일이 해체되었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책장 정리를 했다. 버릴 것들이 수두룩하다. 2019년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으나 순전히 버리기 아까워 쌓아 두고 버리지 못한 활동 관련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아깝다기보다는 아쉬움이라고 해야 옳겠다.


일을 하다 보면 좁쌀알 만한 것들도 소용될 때가 자주 생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것들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리 중에 버려질 쪽으로 바로 던져지는 것도 있지만 살펴보고 읽어보는 사이 망설이다 다시 끌어안게 되는 것들도 생긴다.


그 당시엔 모두가 중요했고 그래서 소용될지도 모를 어느 먼 날을 위해 보관한 그 애정을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한 일 년 더 보듬고 있다 버린다 한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더구나 이제는 딸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갔으니 우리 부부만의 살림살이가 대부분이다. 어디에 뭘 두든 걸리적거릴 일도 없다.





자격증 관련 책들은 합격자 발표와 함께 묶거나 박스에 담아 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역시 버리지 못하고 모셔둔 책들이 한두 권 눈에 띈다. 이제 내 책장에는 더 이상은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다. 버린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내가 이들을 버리듯 언젠가는 나 또한 같은 길을 가리라. 목숨 있는 것들만 죽음을 맞는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사라짐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죽음은 부분집합일 뿐이다.


오래전 독서지도사 공부를 할 때의 파일이 나왔다. 버릴 물건이긴 하지만 휙 던져 바로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비닐마다 낱낱이 끼워둔 교재와 과제들을 꺼내어 종이류와 플라스틱류, 비닐류를 구분해야 한다. 그 단순한 일에 손을 대기 싫어 파일을 방바닥에 팽개쳐 둔 채 며칠을 못 본 척 지나다녔다. 단순한 일이니 빨리 끝내 버리면 좋을 일을 손대기 싫어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다.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을 내 과거의 순간들, 그 과거 한때가 저 파일 속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한식조리사 이후 두 번째로 도전한 공부였다. 처음으로 교육계획안도 짰고 자원봉사로 어린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했다. 당시 유행처럼 읽히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제목부터 관심을 끄는 책이어서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친구들도 이야기하는 데는 다들 일가견이 있는 듯 즐겁게 참여했다. 권정생 님의 '강아지똥' 또한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함께 강의를 들은 이 중에 시를 쓰는 이가 있었다. 각자 감동 깊게 읽은 책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동갑인 그이는 '섹스의 영혼'이라는 책의 일독을 권했다. 섹스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책 제목에서 거부감을 느껴서였는지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어딘들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으랴 하는 아집스러운 생각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섹스란 신의 즐거움과 가장 근접한 쾌락이라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서지도사 과정을 마무리한 몇 개월 후 그이가 신작 시집을 보내왔다. 허리가 아파 힘들어하던 그이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이의 시집은 어디 숨었을까.





점심을 먹고 딸들이 아직 가지고 가지 않은 책들을 정리했다. 여전히 방바닥에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독서 파일이 있다. 남편의 봄 점퍼 두 벌을 손빨래로 빨아 널었다. 노란 표지의 독서 파일이 시선을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쓰인다.


누구는 그 공부 이후 논술 방을 열었다. 지금도 운영 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정을 마치고도 한동안 대여섯 명이 모여 아이들 교육에 관해 열을 올리곤 했었다. 학년이 가장 높았던 우리 아이들이 대학 입학을 하게 되면서 과외를 부탁해 오기도 했었다. 누구는 이사를 가기도 했고 홀로 된 이도 있고 어디에 가게를 열었다는 이도 있었다. 왜 그 모임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없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각자 독서보다 더 급하게 대처해야 할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정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 아웅다웅하면서도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정이라는 자리를 지키려 노력하는 이들이 한두 명씩 빠지게 되면서 모임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그림을 그렸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여전히 노란색의 그 파일이 아른거렸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언제 비가 왔더냐 싶게 바깥이 환하다. 해야지, 오늘 중으로는 반드시 정리를 해야지.


오늘도 마음먹은 지 한나절이 흘렀다. 드디어 방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벽에 기대앉았다. 하루 종일 나를 신경 쓰게 한 노란 파일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제는 종이류와 몇 가지로 분류되어 사라질 과거 어느 한때의 나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기거하는 집처럼 내 어느 한 시기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던 파일이 가벼워진다.


분류해 보니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다. 마음이 오래 머물 뿐이다. 오늘 다시 끌어안은 것들도 곧 이 파일과 같은 과정을 거쳐 사라지리라. 버릴 것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버려야 한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파일과 같은 길을 가리라는 생각이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누가 나를 이처럼 세세하게 분류하여 버려 줄 것인지, 아니 나는 어떤 것들로 분류될 것인지에 생각이 미쳤을 때 그 생각의 꼬리를 끊으며 남편이 들어왔다. 화들짝 나를 감췄다.


"이것 좀 버려줄래요?"

"아이코, 무거운데."

"왼쪽은 종이류, 가운데 건 비닐류, 오른쪽은 플라스틱류.'

"고생하셨습니다."


파일이 해체되었다. 젊어 한때의 나와 당시의 아쉬움도 함께 해체했다. 그런대로 기분은 괜찮다. 이렇게 오월 어느 하루를 곱씹으며 나이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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