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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기에 취하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산림기능사 합격자들끼리 한잔 하고 들어온 남편이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곰취와 오가피 순이 가득이다. 우리처럼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이가 건네는 봄 선물이었다. 우리 밭 오가피 순들도 이 정도는 자랐겠구나 싶었다. 우리 밭 곰취는 얼마나 번졌을까 궁금해졌다.


20210501_081209(1)[1].jpg 오가피 햇순과 곰취


나는 오가피 순을 즐겨 먹지 않는다.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데쳐서 물에 하룻밤을 담가 우려내도 오가피 순 특유의 간 맞지 않은 쓴맛은 전혀 가신 것 같지 않다.





처음 텃밭을 마련했을 때는 주위에서 좋다는 푸성귀들 위주로 심었었다. 참취와 오가피, 엄나무 등 심어 두기만 하면 알아서 겨울도 견디고 봄이면 또 때를 잘 알아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식물들 외에 소위 풀 잡는 데는 그만이라는 들깨를 텃밭 구석구석 포진시켰다.


그러나 키우면서 먹어보니 야생의 푸성귀들은 날로 먹어도, 데쳐서 양념에 무쳐 먹어도 몇 가지를 제외하곤 내 입엔 맞지 않았다. 날로 먹으면 억세고 무쳐 먹어도 떫은맛이 남았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몸에 좋은 무공해라며 참취를 김밥에까지 넣어 아이들에게도 먹기를 권했다. 아이들이 말없이 먹어 주니 그런대로 아이들 입에는 맞는 줄 알았다. 참취 꽃이 흐드러졌다 지고 난 다음 해 봄이면 참취 어린싹들이 어김없이 텃밭을 빼곡하게 메웠다. 봄이면 이 어린것들을 밟을 세라 발걸음마저 몸무게를 줄일 듯 조심스럽게 했다.


어느 날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돌아온 아이들의 반응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무안하게 했다. 아이들이 엄마 말에 얼마나 오래 자신들의 입맛까지를 숨기고 있었는지 반영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얘들아, 참취 맛이 좀 떫지 않니?"

"네, 엄마. 이 나물 안 먹으면 안 돼요?"

"김밥 맛이 안 나요."





다른 사람의 권유에 따라 심은 푸성귀들이 내게 언제까지나 맞을 리 없었다. 들깨는 풀 잡는 데는 좋은 작물이지만 들깨가 풀과의 경쟁에서 우뚝 서기까지는 주말마다 들깨 사이를 헤집으며 풀을 뽑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들깨는 모종을 내야 잘 번지고 수확물도 많이 나오는 작물이다. 문제는 들깨 모종을 낼 무렵이면 해마다 가뭄이 극성을 부린다는 점이다.


밭에는 우물도 마련돼 있어 물 대기에 부족함은 없다. 하지만 농사란 먼발치에서 보기에 낭만일 뿐이다. 한 번도 직접 뛰어들어 경험해 본 적 없는 농사에 대해 남편과 나는 서로 잘났다고 근거 없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그래 그렇게 해볼까?' 할 수 있을 일을 그때는 왜 그리 고집을 부렸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마치 자신의 주장대로 하지 않으면 올 농사는 하늘이라도 무너져 완전히 망칠 게 뻔하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웠다.


호랑이와 사자가 한 울타리 안에 사는 형국이니 서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주쟁이의 말을 떠 올리며 서로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려야만 잠잠해졌다. 주말 텃밭이 풀과의 전쟁 외에 부부의 전쟁으로까지 확전하면서 전혀 즐겁지 않았다.


"당신은 여기서 시작하세요, 난 저 끝에서 시작할게요."

풀을 뽑더라도 말이나 생각을 섞었다 하면 잘난 척으로 이어지는 언쟁을 피하기 위해 부부가 대각선 이 끝에서 저 끝에 따로 앉아 침묵 중에 풀을 뽑았다. 묵언수행 같은 텃밭 일, 함께하면서 함께하지 않는 푸성귀 가꾸기. 텃밭이 우리 부부에게 안겨준 첫 번째 과외의 선물이기도 했다.


게다가 들깨는 때를 맞춰 아침 이슬이 사라지기 전에 베어 말려야 하고 말리는 동안 새들의 먹이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덮어두어야 하며 때맞춰 알갱이를 털어야 한다. 주말 날씨가 매번 우리 부부에게 맞춰줄 리도 없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그 좋은 가을 날씨가 주말마다 비를 선사하던 해도 있었다. 몇 해 동안 들기름을 짜서 여기저기 돌리던 일을 접었다. 이제는 잎들깨 씨앗마저 동이 나 버렸다.


그러는 사이 오가피는 잘도 번져 밭 일정 구역을 차지했다. 어느 겨울을 앞두고는 오가피를 옮겨 심으면서 나온 뿌리를 씻어 잘라 카페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오가피는 열매와 가지를 우리가 쓸 만큼 거둔 후 남편 아는 이들에게 나눔을 주니 좋은 일이기도 하다. 힘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장년기 말 어디쯤의 옹이 같은 기억이다.


비슷한 시기에 심은 아기 엄나무들은 금세 어른이 되어 무시무시한 가시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두릅 이상으로 내 입에 맞는 엄나무 순도 봄 한철 좋은 선물이다. 누군가 엄나무 순을 좋아하는 이가 나 먹을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따 가 버렸다고 아쉬운 중에 엄나무 순을 발견했다.

"앗, 저기 새로 자란 엄나무 순이 남았네. 두 개씩이나."


20210501_081305(1)[1].jpg 곰취




자연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자연이 내게 힘에 부치는 순간도 많았다. 말벌에 쏘이고 풀독이 올라 해마다 피부과를 들락거리기도 했다. 때로는 옻순을 따 데쳐 먹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텃밭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소참진드기에 물란 농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텃밭에 자연 시들해졌다. 다른 것도 아닌 작은 소참진드기에 물려 죽음에 이른다는 건 어리석게 생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때부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오래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모델이 입어 아름다워 보일 뿐 내게 맞지 않으면 재활용 통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아무리 농약 안 주고 유기농으로 내 노력과 시간을 들여 가꿔도 내게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어제는 외출에서 돌아오는 중에 오이 7개와 가지 8개, 부추 1단, 얼갈이 1단까지 모두 6000원 마이너스 20원에 구입했다. 농사는 무엇으로 짓는가 생각했다.


자연의 혜택과 땅과 비료와 지혜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인간의 힘이 없이는 지을 수 없다. 기계의 힘을 빌리는 대단위 영농인들도 사람의 손을 완전히 배제한 농사는 불가능하다. 언젠가 사람의 힘을 완전히 배제한 농사가 가능한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 무렵이 되면 사람은 모든 음식을 알약으로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뿐이겠는가. 그 알약마저도 먹을 사람이 없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모두 나쁘거나 모두 좋을 수는 없다는 말은 살면서 경험으로 깨닫게 된 진실이다. 우리가 주말 텃밭에 점점 소홀해지는 동안 주위에서는 뒤늦게 텃밭 농사에 뛰어든 이들이 꽤 늘었다. 힘은 들어도 즐겁게 텃밭을 가꾸고 거기서 나온 수확물을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즐거워하던 날의 내가 보인다.


그럼에도 이 푸성귀를 따 모으기 위해 얼마나 여러 번 손을 움직였을지 상상이 간다. 이 푸성귀들을 따 모으기 위해 굽힌 허리를 펴면서 몇 번이나 두드렸을지 상상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땅을 일구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고 풀을 뽑아주며 아기 키우듯 돌보았을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이의 노고를 덥석 한 번에 받아먹기 쉽지 않은 이유다. 텃밭이 우리 부부에게 건넨 두 번째 과외 선물이다.


오가피 순은 쓴맛을 즐기는 남편에게 권하고 나는 곰취 잎 쌈을 즐겨야겠다. 이 감사의 마음은 무엇으로 가름할 수 있을지 봄 선물의 진한 향기에 취하면서 말이다.


20210501_081424(1)[1].jpg 오가피 햇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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