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의 양배추 김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잘 자라던 망고가 가 버렸다.


처음부터 큰 화분에 심어 뿌리를 건드린 적도 없고 물도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잎들이 하나 둘 말라 떨어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야들야들 윤이 나는 망고 새순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번에야말로 잘 키워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순전히 망고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양배추 한 통에 천 원. 동산만 한 양배추 한 통에 천 원이요 천 원."


망고 다섯 개 사들고 휑하니 나오는데 양배추가 한 통에 단 돈 천 원이라고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직원들이 푸른 양배추 망을 풀어 양배추 동산을 만들고 있었다. 겨울에 사 먹던 비싼 양배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다. 들고 가기도 힘들겠지만 저 큰 양배추를 다 먹으려면 몇 날 며칠을 양배추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의 불평이 미리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한 통을 샀다. 한쪽 어깨에는 망고가, 다른 쪽 어깨에는 양배추가 걸려 균형이 맞지 않는다.


20210421_190319(1)[1].jpg





"엄마한테 다녀올 건데 같이 가 줄 수 있겠니?"


장마를 며칠 앞둔 6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지난겨울 하늘나라에 드신 어머니 묘소에 함께 가 줄 수 있겠느냐고 그녀가 전화 너머에서 물었다.


나보다 한 살 적은 그녀는 결혼도 하기 전 일찍 혼자가 됐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언니는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몸이 불편한 오빠는 도통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내다 시설로 보내졌다. 그녀를 볼 때면 넉넉하진 않지만 엄마 아버지 밑에서 사는 내가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청바지를 입으면 큰일 나는 줄 아시던 아버지 몰래 청바지를 챙겨 입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반으로 가른 양배추 심을 잘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양배추를 자르고 있었다.


"이 무렵엔 양배추 김치를 담가 둬야 해. 장마 지면 변변한 김치가 없잖니."


김치냉장고는 고사하고 냉장고가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장마 지기 전이면 꼭 양배추 김치를 담그셨어. 장마철은 김장김치는 물에 담갔다가 찌개를 해도 군내가 남아 있는 계절이잖니. 절이는 건 엄마한테 다녀와서 해야지."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가 서너 살 많은 언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마 싫은데 해마다 장마가 오네. 지붕에 플라타너스 잎 쌓이면 홈통 막히기 전에 올라가서 치워야 하고 오빠한테도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

그녀의 말들은 왠지 그녀 곁에 나라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내 안의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내곤 했다.





결혼 전 친정어머니도 양배추 김치를 구색 맞추듯 상에 올린 적은 있었다. 그러나 식구들은 양배추 김치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양배추 김치는 처음 담갔을 때는 간이 속까지 배지 않아 간과 양배추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 익으면 즐겨먹는 배추김치나 알타리김치와는 달리 유별나게 신맛이 강했다. 식구들이 즐겨 먹지 않으니 이후 친정어머니는 더는 양배추 김치를 담그지 않았다. 대신 열무김치나 얼갈이김치를 자주 담가 냈다.


양배추 한 통을 메고 오는 동안 난생처음 양배추 김치를 담가볼까 구미가 당겼다. 양념과 양배추가 서로 분리된 듯한 맛에 익기 시작하면 유별나게 신맛이 강하게 느껴져서 한두 번 젓가락질 외엔 다시는 먹어본 적 없는 바로 그 양배추 김치를 담가봐야겠다고 말이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내 입맛을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지만 입맛에 맞든 그렇지 않든 순전히 천 원짜리 양배추 덕분에 양배추 김치를 먹어보게 생겼다.


양배추를 바닥에 부리고 겉잎을 떼어냈다. 친정어머니가 양배추 김치를 담그는 건 지켜본 적 없으니 그녀가 하던 대로 양배추 심을 갈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양배추를 잘랐다. 짭짤하게 소금물을 풀어 그릇에 엉성 엉성 담은 양배추 위에 뿌렸다. 한 시간쯤 후 한 번 뒤집어 주고 양배추가 야들야들 숨이 죽으면 두어 번 헹궈 물이 빠지도록 잠시 두었다가 일반 김치 담그는 식으로 담그면 된다. 양배추를 절이는 동안 고춧가루와 생강가루, 다진 마늘, 부추에 햇양파도 두 개 잘라 넣고 고춧가루가 불도록 액젓을 약간 부어 미리 양념을 만들어 두었다.





양배추 김치를 담갔다. 양배추 김치는 양념과 양배추가 따로 놀던 예전의 그 맛에서 변한 게 없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내 입에 맞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식성도 변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렇게 싫어하던 생오이무침도 싫어했던 꼭 그만큼 즐기게 된 것도 입맛의 변화 때문이리라. 생오이무침 역시 양념과 오이가 따로 노는 느낌이 꽤 강한 반찬인데 말이다. 물론 아직은 생오이무침이 살짝 익어 신맛이 돌기 시작할 때 내 입은 가장 즐겁다. 양배추 김치 또한 익기 시작할 무렵 더 맛있게 느껴지려나?


작은 통에 조금 담아 익히면서 먹기로 하고 나머지는 큰 통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몸에 좋은 양배추, 김치 담그기도 식은 죽 먹긴인 양배추, 내 입에 맞기를 바란다.


오래전 장마 걱정을 하며 양배추 김치를 담그던 그녀가 양배추 김치를 먹는 내내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을 것이다.

"맛있다, 그치? 예전엔 왜 이 맛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혼자이던 예전 그 시절에 비할 바 아니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02화드디어 파일이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