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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부차 살리기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작은 선물도 유행을 탄다.


예전 어머니 세대를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선물로 짚 꾸러미에 가지런히 담긴 달걀이 있다. 이미 판계란이 대세로 자리 잡기는 했으나 달걀 값이 만만치는 않던 시기여서 지푸라기 안에 담긴 달걀 선물이 감사하고 신기했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짚공예라 부를 만한 지푸라기 묶음이었다. 기다란 지푸라기 한 줌 양옆을 단단히 동여맨 안쪽에 달걀 10개가 들어 있었다. 물론 지푸라기 양옆을 깔끔하게 잘라냈으니 달걀 선물 포장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그 달걀을 두어 개 풀고 거기에 당근과 실파를 넉넉히 다져 넣은 다음 소금 약간과 물 한 술을 섞어 휘휘 저어 달걀찜을 해냈다. 몸에 좋은 달걀에 당근과 실파를 넣음으로써 색도 곱고 영양가도 배가되는 달걀찜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당근과 실파를 넣어 달걀찜의 양도 불림으로써 우리 일곱 식구가 한 술씩이라도 달걀찜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니 내 삶에도 숱한 선물들이 지층처럼 쌓여 있다.


그 얼마 후 조미료와 설탕 선물이 유행을 했다. 아버지는 특정 조미료의 맛에 중독되어 모든 음식에 그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상을 물리실 정도였다. 그 무렵 설탕을 많이 먹은 이들이 혹 요즘 당뇨에 시달리는 건 아닌가 돌아볼 때가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통조림이 유행을 했다. 후에 통조림에 들어가는 여러 성분 중에 발암물질까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햄 등 몇 가지 식품을 뚝 끊기는 했다. 식용유가 그 뒤를 따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햄이나 참치 등 통조림 외에 식용유와 샴푸 세트, 치약과 칫솔 세트는 꾸준한 선물로 자리 잡은 듯하다.


한동안 영양제가 유행하는가 싶더니 몇 해 전에는 명절과 연말 전후로 소금 선물이 유행했다. 몸에 좋은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광고 문구에서부터 우리나라 남해안 어느 지역의 유명한 소금이 앙증맞은 용기에 담겨 들어오기도 했다. 매스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소위 셰프들이 공중에서 흔들어 갈아 뿌리는 소금통이 내게까지 왔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질 일이었다. 굵은소금, 가는소금, 볶은 소금, 간 소금, 죽염 등등...... 용도에 맞게 적당히 사용하면 될 소금을 나 같은 주부가 무슨 쇼라도 하듯 공중에서부터 갈아 뿌리며 음식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냔 말이다. 그럼에도 본 대로 한 번 흉내를 내보긴 했다. 소금가루를 바닥에 흩어진 이후 다시는 셰프 흉내를 내지 않게 되었다.


대량 소비의 시대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 비해 선물의 유행을 기업이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다. 명절이나 연말연시, 어버이날을 비롯한 시기에 각 식품회사나 기업체에서 내놓는 상품의 종류에 따라 선물도 그 유행 성향이 달라지니 말이다. 번쩍번쩍 고가의 선물이야 가까운 사람들 간에 오갈 수 있는 선물일 터다. 그러니 작지만 실속 있고 값도 적당한 선물을 만들어내는 데 머리를 짜낼 것에 틀림없다.





다시 새로운 선물이 자리 잡은 모양이다.


지난 3월 첫째가 콤부차 원료인 스코비를 분양해 주었다. 첫째도 선물을 받아 배양 발효해서 마시는 중인데 배양하는 중에 스코비가 불어나면 버리게 되는데 엄마도 한 번 드셔 보시라는 것이었다. 맛을 보니 새콤달콤한 데다 특별히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고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받아왔다. 첫째가 홍차를 택배로 보내 주었으나 딱 하나 사용하고 돌려주었다. 어차피 내가 집에서 마시는 모든 물이 홍차는 아니지만 차 종류이니 이걸로 해보고 안 되면 홍차를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집에서 물처럼 마시는 차는 오가피와 엄나무, 구아버 잎 등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온갖 차 재료를 넣고 끓인 물이다. 첫째가 전해 주는 주의 사항에 따라 가능하면 쇠가 닿지 않도록 주의를 했다. 따뜻한 차에 설탕 세 스푼을 넣고 식혀 입구가 넓은 유리병에 넣은 후 거기에 스코비를 넣는다. 거기에 500ml의 생수를 넣고 헝겊으로 된 뚜껑을 씌운 후 상온에 두면 된다. 헝겊 뚜껑은 스코비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기가 통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별 어려움 없이 콤부차를 잘 만들어 마셨다.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한 번씩 걸러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한두 잔씩 마시면 된다. 차를 만드는 동안 스코비는 병 모양에 따라 넓적하고 통통하게 자란다. 이 스코비에 다시 설탕 넣은 차를 넣고 생수를 부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상온에 두면 자연스럽게 콤부차가 만들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 좋다는 데 다이어트에 열을 올릴 정도는 아니지만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콤부차를 멀리할 필요까지는 없다.


문제는 그 무렵부터 집에 각종 차들을 비롯한 마실 거리들이 지나치게 풍부해졌다는 데 있다. 노니와 ABC 차 및 비트 즙 등이 갑자기 많아진 것이었다. 모두 정해진 양이 있어 그대로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는 중에 날씨는 더워지고 냉장고에 넣어둔 콤부차도 실온에 둔 스코비도 덜 마시게 되고 관심을 덜 쏟게 되었다.


어느 아침 콤부차를 마시는데 물컹한 뭔가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맛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뭐지? 병을 살폈다. 분명 맑은 차만을 걸러 담았는데 아주 작은 투명한 것이 두엇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실온에 두었던 스코비는 처음에 비해 진한 갈색에다 얇은 막처럼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스코비가 사망한 것이다.





첫째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스코비가 살던 병을 씻고 레인지에서 소독했다. 차 한 잔을 끓이고 설탕을 한 스푼 넣은 후 식혀 병에 부었다. 그리고 마시다 남은 콤부차에서 아주 작고 투명해 보이는 알갱이 하나를 꺼내어 병에 넣어 주었다. 스코비가 낳아 둔 아기라는 확신을 갖고서 말이다.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생수를 더 붓지는 않았다.

"살아날 거지? 살아나야 해."


가끔 스코비를 넣어 둔 병을 살펴보곤 했다. 작은 알갱이는 며칠 만에 조금은 자란 것처럼 보였다. 이 주일이 지난 어제저녁 스코비가 든 병을 흔들지 말라는 주의 사항에 마음이 쓰여 병을 살짝 기울여보았다. 오호, 걸쭉한 이것은 살아난 스코비다. 손톱 반 정도 되어 보이던 그 투명한 알갱이는 아기 스코비였다. 손톱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스코비가 이 주일 만에 한 컵의 차를 먹고 살아난 것이다. 스코비를 건져내고 남은 물 맛을 보았다. 그동안 마시던 콤부차의 농축액인 듯 새콤달콤한 맛이 진하다. 물을 타서 마시면 좋은 음료다.


차에 설탕을 넣고 휘저어 녹여 병에 넣으며 콧노래가 나왔다. 스코비가 반드시 홍차만 먹고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키운 스코비는 오가피 등 각종 재료를 우려낸 차에서도 잘 살아났다. 스코비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춰 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스코비가 죽었다고 실망했을 때조차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콤부차에 살고 있던 작은 스코비 알갱이를 2주 만에 처음 분양받았을 때와 같은 크기의 스코비로 키워냈다.


야호.





내가 콤부차를 완전히 사망시키는 일 없이 잘 먹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또 부담스럽지 않게 주고받을 선물로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고받는 작은 선물에서 섞이고 번져나가는 따뜻한 마음의 파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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