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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Dec 01. 2021

페트병을 활용한 초미니 온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니 큰 화분을 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곱고 튼튼한 도자기 화분은 무거운 게 흠이고 토분은 늘 수분을 머금고 있는 특성상 몇 해 지나지 않아 겉면에 곰팡이가 피곤 했다. 날카롭지 않은 시각이나마 그때그때 살펴볼 만큼 살펴 거금을 들여 구입한 도자기 화분과 토분은 일찌감치 대부분 정리해야 했다.


대신 화초를 살 때 화원에서 덤으로 얻어온 볼품없는 검은색의 대형 플라스틱 화분이나 천원하우스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화분들이 도자기 화분이나 토분이 있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덩치가 큰 나무 종류는 대형 화분에 옮겨 심고 잔잔한 화초류 역시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 키운 지 오래다. 





요즘 내 화초 키우기는 한 발 더 진보했다. 


가지를 잘라 흙에 꽂아 두기만 해도 뿌리를 잘 내리는 작은 식물들은 화분 대신 페트병을 이용해 키우고 있는 중이다. 페트병 화분은 굳이 화분 구입에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으며 흙만 구입하면 되니 경제적이다. 무엇보다 뿌리를 내리면 이웃들에게 나눔 할 때도 건네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고마워요' '잘 키우세요' 정도가 전부다. 물론 그 말의 이면에는 이웃으로 함께 지낸 정이 담뿍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와 올해는 주로 명월초를 페트병 화분에서 키웠다. 명월초는 웬만해선 가버리는 일 없이 싱싱하게 잘 자라는 식물 중 하나다. 잘라낸 명월초 가지를 흙이 담긴 페트병에 꽂아두고 간간이 물만 마르지 않게 주면 된다. 올해는 여름 동안 베란다 밖 걸이대에 방치했더니 햇볕 덕분에 명월초 대궁이 웬만한 작은 나무줄기처럼 굵게 자랐다.


하지만 명월초는 월동이 불가한 탓에 겨울이 되면서 안으로 들여야 한다. 작은 페트병 화분이지만 그것도 숫자가 많다 보니 기온이 내려가는 날에는 수분이 많이 올라와 베란다 창에 가 엉겨 붙는 데 한몫을 한다. 이런 김서림은 때로 베란다 벽 곰팡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김서림 방지를 위해 겨울에도 베란다 창을 약간 열어 두되 열린 창 하부는 페트병을 서너 개 쌓아 막아두어 화초들이 동해를 입지 않게 하고 상부는 공기가 드나들도록 방치한다. 그럼에도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 아침엔 베란다 유리창에 뿌옇게 김이 서려 있기도 하다. 





김서림 방지를 위해 겨울이 다가올 무렵 나는 비닐봉지를 모으기 시작한다. 모은 비닐봉지는 화분들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사용한다. 대형 화분들은 가지치기 후에 비닐봉지로 흙을 감싸 주고 작은 화분들은 비닐봉지를 화초 위에 씌워 각각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페트병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페트병 덮개를 씌워주면 더욱 편하다. 비닐봉지를 씌우는 화분에 비해 수고가 한결 줄어들 뿐만 아니라 깔끔하기까지 하다. 페트병 덮개까지 씌우고 나면 내 베란다의 겨울 준비도 완전히 끝이 난다. 비닐봉지를 씌우고 페트병 덮개를 하고 나면 수분 증발이 적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지만 가끔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좋은 날은 한 번씩 열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름철에 비하면 훨씬 편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 페트병 화분에도 다른 화분과 마찬가지로 물을 듬뿍 준 다음 페트병 덮개를 씌우면 된다. 며칠 전 씌운 페트병 덮개 안쪽에는 벌써 물방울이 송송 맺혔다. 환기를 위해 낮 동안에는 베란다 문을 자주 활짝 열어 두는 날도 많기에 이렇게 덮개를 씌워 두면 해가 질 무렵 문을 닫아주기만 하면 동해를 입을 일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페트병 화분은 크기도 작아 큰 화분 위에 올려두면 자리 차지를 하지 않는 장점도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져 나오는 페트병과 플라스틱 용품들을 이렇게나마 활용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자화자찬에 빠져본다. 


크고 튼튼한 온실과 저온저장고를 갖춘 집에서 살고 싶었던 젊은 날의 꿈은 조금씩 접어가는 중이다. 좌우에서 막이 접히듯 내 꿈의 무대가 조금씩 닫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따뜻한 지역의 괜찮은 시골집을 탐색하며 어떻게 꾸미면 좋을 것인지 탐색하고 또 탐색한다. 쌓고 있는 동안은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어쩌면 모래성일지도 모르는 성을 쌓고 또 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년 봄에는 페트병 화분도 새것으로 바꿔야 하겠다. 이것이 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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