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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Dec 13. 2021

'노릇'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어제 아침에 이어 오늘도 굴 떡국이다. 상큼한 굴 향에 끌려 나온 남편이 식탁 앞에 앉았다.

"좋은데. 뜨끈한 국물에 바다향이 가득하네."

막 떡국 한 술을 뜨는데 남편 카톡이 울렸다.


"현관문 아직 안 열어 봤지?"

"아직. 왜요?"

"사위가 택배 보냈는데."


사위가 보낸 택배라는 말꼬리를 끌며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가더니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술 같은데."

"막걸리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술을 또 보냈지? 술 아주 가끔만 보내라고 일러야겠어요."

"괜찮아요. 내가 조금씩만 마시도록 하면 되지."

"술 양 조절하는 데 마누라가 얼마나 머리를 쓰는지 아시기나 하는지?"




아침식사가 끝나고 택배 상자를 열었다. 술이 아니다.

"딸긴데."

"술이 아니야?"

"왜, 실망이유?"

"어, 약간."

"내외간에 함께 먹을 딸기를 보냈는데 웬 실망? 싱싱하고 큼직한 게 맛나겠다."

"그러게."

"하여튼 술 욕심은."


술에 관한 한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관심이 없다. 오직 남편만이 술병을 닦고 또 닦고 애지중지한다. 엊그제 사위가 보낸 술이 자신이 즐겨하는 술이 아닌 막걸리여서 내심 아쉬운 감은 있겠다 싶었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에게 한 병씩 나눠주었음에도 정작 자신은 맛도 못 본 알코올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 말이다.  그런 한편 사위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우리 사위, 사위 노릇하기 정말 힘들겠네. 장인어른이 술 좋아하신다고 술 검색해서 다양하게도 보내는구먼. 그런데도 장인은 자신의 입에 안 맞는다고 막걸리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고는 아쉬워서 입맛을 저리 다시질 않나,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술만 보냈으니 이번에는 장모가 신경 쓰여 과일을 보내질 않나. 하여튼 코로나 때문에 얼굴을 못 보니 우리 사위 사위 노릇하기가 더 힘들어졌네."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요, 이웃들에게 막걸리 나눠주고는 인삼주를 몇 모금 더 드셨지 아마?"

"딱 한 모금 더 마셨는데 그걸 어떻게 다 아셨남?"

"그러니 당신 마누라지."





아이스팩 겉면에 내용물이 물이라고 적혀 있다. 작지만 환경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에 눈이 머문다. 하동산임을 말해주는 딸기 포장을 보자 왠지 더 반갑다. 블로그 이웃 중 하동에서 딸기를 키우는 이가 있는데 혹시 그 이웃이 키운 딸기라면 더욱 맛날 것 같다. 나야 늘 마트표 딸기를 조금씩 사 먹기에 아직 블로그 이웃의 딸기 맛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아이스팩은 다음에 필요할 때 재사용하기 위해 냉동실에 넣었다. 뜨끈한 굴 떡국으로 배가 든든하니 딸기는 잠시 후 간식으로 먹어보기로 하고 냉장실에 넣었다. 


사시사철 과일이 풍부한 요즘,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사과나 배 껍질이 조금 두툼하게 깎이면 껍질에 붙은 살을 갉아먹었던 기억부터 그 이후로도 한동안 사과나 배, 감 껍질을 말려 두었다가 차처럼 끓여 먹었던 기억까지 풍족하지 않았지만 행복이 솔솔 묻어나는 추억들이다.


많은 과일을 껍질째 먹으라고 한다. 껍질에 그 과일 특유의 성분과 영양소가 거의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과를 물로 씻고 구연산 녹인 물에 담갔다가 잘라내면서 나도 모르게 껍질을 두툼하게 깎고 있는 나를 본다. 오래 전의 내가 거기 있다. 껍질을 두툼하게 깎아 말리던 시절의 내가 풍족함에 겨워 때로 과일이 물러지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오늘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한다는 일이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 더 자주 하게 된다. 자식들이 자랄 때는 나 자신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 과정을 통해 나 역시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한 듯하다. 


성인이 된 자식들이 자신들의 짝을 통해 보여주는 일련의 일들은 나를 다시 한번 어른으로 도약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자식의 짝 또한 자신들이 자란 성장 과정에서 그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인간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차근차근 쌓으며 자랐을 터다. 


나는 누구에게 내가 해야 할 노릇을 잘하고 지내왔는지, 또 현재는 어떠한지를 바라보면서 내일의 내 노릇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의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노릇의 여러 의미 중 오늘 내가 사용한 노릇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노릇 1 [노륻] 
1. 명사 : 그 직업,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명사 :  맡은 바 구실. 
3. 명사 : 일의 됨됨이나 형편.



이 부분에 이의가 있다. '1. 명사 : 그 직업이나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부분이다. 한자가 한글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1번과 같은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노릇'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한 차원 높여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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